세련된 결핵: 질병이 패션이 되다

결핵 환자를 연상시키는 웅크린 자세, from the Magazine of the Beau Monde, 1842.

1990년대의 헤로인 유행이나 거식증을 찬양했던 거식증 지지 운동(underground Pro Ana movement)에서 보듯 질병을 모방이나 유행으로 여기던 상황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전신 쇠약, 설사, 기침과 각혈을 특징으로 하는 결핵이 감염된 이의 아름다움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호의를 갖기는 힘들다. 그러나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 동안 아름다움에 관한 문화적 관념은 결핵의 현실(쇠약을 일으키는)과 얽히며 이 질병으로 인한 건강의 파괴가 아름다움의 증표로서 보일 수 있었다. 결핵은 아름다움의 관행과 옷차림 모두에서 논쟁을 일으킨 질병에 대한 전문적인 생각과 대중적인 생각 사이의 전쟁터가 되었다.

18세기 동안 우울증, 통풍, 결핵과 같은 질병은 사회 상류층과 밀접한 관계였다. 의사들은 특정 질병과 최신유행을 따르는 상류층의 감수성(sensibility)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중산층과 상류층은 훨씬 더 섬세한 신경계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이들은 감각을 받아들이고 신체의 의지를 전달하는 신경계의 능력인 감수성에 있어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이로 인해 그들은 특정 질환에 걸리기 쉽고, 이 계층의 생활 방식과 신경계는 그들의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우려가 점점 커졌다. 한 의사가 제안했듯이, ‘위대하고 부유한’ 이들은 ‘질병을 선택함에 있어’ 변덕스러운 유행의 영향을 받았다. 정치가이자 수필가인 윌리엄 템플 경(Sir William Temple )은 ‘어느 한 계절에 매우 많이 보거나 들었던 것, 다른 질병으로 사라지는 것’으로서 질병의 유행과 치료를 비유하며, 1809년에 특정 질병의 일시적 유행에 대해 한탄했다. 다른 이들은 1799년 ‘현대의 발명품’으로 불렸던 신경계 질환의 인기가 증가하는 것에 불평했다.

만약 질병이 패션으로서 유행할 수 있다면, 질병은 모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스코틀랜드 의사인 제임스 어데어(James Adair)는 1790년에 ‘계급도 돈도 없는 사람’이 ‘유행을 쫓아 자신을 망가뜨려서’ 사회적 경계를 벗어나려 한다며 비난했다. 더 중요한 것은 ‘세련된 사람’이 되기 위해 그들이 모방한 것은 ‘남들과 구별되는 창백함’이었음을 지적했다. 결핵은 반투명한 안색을 특징으로 하기에 ‘남들과 구별되는 창백함’과 유행으로서의 질병 사이의 관계는 특히 잘 어울렸다. 결핵의 매력은 그 당시 갖고 있던 이상적인 매력과 일치하는 그 증상에 있다. 창백한 피부와 함께 장밋빛 뺨과 입술은 아름답다고 여겨졌다. 결핵은 계속되는 발열로 인한 소모열 홍조(hectic flush)와 함께 쇠약에 따른 창백함을 동반했다.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 영국의 여류작가, 1816~1855)는 1849년에 이러한 현상을 인정했다. ‘나는 알고 있다. 결핵은 매혹적인 심각한 질병이라는 것을.’

매력적인 환자

19세기 동안 결핵은 심각한 전염병(역병이나 천연두)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를 대체했다. 결핵에 대한 묘사는 천연두, 콜레라, 장티푸스와 같은 다른 질병과는 다르다. 결핵은 이들 질병과 구분되는 두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질병이 신체에 드러나는 방식과 질병의 사회적 분포다. 비록 결핵도 환자를 신체적으로 변화시켰지만, 천연두나 콜레라가 했던 방식으로 바꿔놓지는 않았다. 대신에 이 질병은 쇠약과 창백함을 동반함으로써 이미 매력으로 여겨지는 특징들을 증폭시켜 희생자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만성적이며, 계속 유지되는 결핵의 특성 역시 다른 질병과 다른 점이었다. 맹렬하게 전염되어 순식간에 빠르게 진행되는 다른 질병과는 달리 결핵은 언제나, 모든 계층에서 상존했고, 공동 주택뿐만 아니라 저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희생자를 선택하는 방법에 있어 무차별적인 것 같았다. 결핵은 도시에는 국한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도시 중심부에서 만연했고, 성별, 지위, 나이, 직업과 거의 관련이 없는 것 같았다.

19세기경, 결핵은 겉으로 보기엔 상관이 없는 두 개의 전혀 다른 고통이 되었다. 상류층 환자는 칭송받았던 반면, 가난한 계층의 환자에겐 낙인이었다. 연기, 먼지, 불결함과 눅눅함과 같은 도시의 건강하지 못한 삶의 환경과 결핵 사이엔 연관성이 있는 듯했다. 하층 계급에서의 결핵은 나쁜 대기 질, 음주 또는 영양 결핍과 같은 그들의 삶의 특징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이 질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조성되었다. 사회 개혁가와 의학 연구자들은 하위 계층의 구성원에게 그들의 죽음을 설계하는 존재로서 제시하였기 때문에 결핵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결코 매력적인 질병이 아니었다.

‘Death and the Dancer’, by Joshua Gleadah, 19th-century aquatint.

다른 한편에선, 이 질병은 가장 훌륭하고 눈부신 사회층과 연관시키는 강한 전통이 있었다. 이 계급의 환자들은 지적이고 아름다웠다. 더 상류 계급에서는 결핵이 주로 유전적인 결함의 결과이며, ‘자극’ 원인에 의해 더 심해진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질병과 상류 사회의 세련된 생활방식 사이의 연관성이 널리 받아들여 졌다. 결핵에 대한 이런 안일한 생각은 부유한 환자에게서 질병을 유발한 환경에 대한 제한된 통제 만을 제공했다. 결과적으로 중산층과 상류층에서 결핵은 일부 유쾌하지 않은 현실을 무시한, 긍정적인 반응으로 나타났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결핵의 중요한 징표 중 하나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증상에 대한 의학적 언급은 좁은 가슴, 돌출한 쇄골과 날개처럼 보이는 어깨뼈를 만들어내는 가냘프고, 얇고, 섬세하며, 호리호리해진 쇠약한 몸을 반복적으로 묘사한다. 안색은 아름답고 섬세하며, 푸른 혈관이 십자로 교차하는 창백하게 빛나는 매끄럽고 투명한 백색의 피부에는 오로지 열로 상기된 ‘장밋빛’ 만이 창백함을 달랜다. 19세기에 이상적인 여성형에 관한 묘사는 결핵의 묘사와 매우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이런 증상의 설명은 그 질병이 어떻게 미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한 의학 논문은 1842년의 결핵에 관해 이같이 주장했다. ‘죽음은 모든 육체적 아름다움과 함께 환자들을 무덤을 향해 줄 세우는 것 같다’

감정과 감상주의

초기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은 정서적 진정성이 겉으로 명확하게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미묘한 외적인 신호와 부드러운 행동을 통해서 드러난다는 감상주의(sentimentalism)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감상주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느낌과 감정뿐만 아니라 그러한 감성의 물리적 표현 역시도 정의했다. 감상주의는 더 가혹해지는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현실을 부정하고, 어려운 사회적 현실을 탈출하기 위한 하나의 탈출구를 제공했다. 이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서 결핵의 더 높은 증가를 허용케 했다. 감상주의는 1830년대 중산층 문화에 영향력을 끼쳤다. 겉모습은 내면의 성격을 드러내고, 아름다움을 도덕의 기표로 만들었다. 이러한 개념은 의학 연구자들에 의해 강화되었다. ‘여성의 선량함과 아름다움은 그런 이유로 서로 엄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후자(아름다움)는 항상 전자(선량함)의 외부적 징표로서 드러날 것이다.’ 결핵의 신체적 증상은 환자의 도덕을 반영하는 것으로 합리화될 수 있었다. 여성 결핵 환자는 점점 더 너무나 선하고,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지는 일이 증가했다.

얼굴은 몸에서 깊은 내면을 명확히 드러내는 부분으로 여겨졌다. 얼굴은 미소, 안색, 눈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여성의 감정으로 접근을 허용했다. 감상주의적 전통에서 눈은 ‘영혼의 창’과 같았고, 눈은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에 눈을 통해 ‘말’을 했고, 눈은 ‘지성과 사랑의 자리’였으며, 눈은 결핵의 아름다움으로 향상할 수 있었다. 특히 큰 눈동자는 ‘아름다움의 표식’이자 질병의 징후였다. 결핵의 표식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연구에서 가장 일관된 지표로 ‘눈동자가 특이하게 크고…눈썹은 길고 광택이 난다’라고 명시했다. 이 의학 논문의 저자는 눈동자를 팽창시키기 위해 벨라도나(belladonna:가짓과의 여러해살이풀. 독이 있으며 잎은 진경제, 진통제로 쓰인다_옮긴이) 사용을 제안하면서 이 방법을 옹호했다.

코르셋을 입지 않은 허리와 변형된 허리의 대조, from Health Made Easy for Young People, 1845.

대중적인 조언은 또한 결핵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매우 두드러지는, 푸른 혈관을 그리고 속눈썹을 어둡게 하는 끝없는 화장품 목록을 홍보했다. 창백한 안색은 정맥의 대조로 향상시켰는데 ‘희미한 푸른색’은 ‘카네이션…과 어울리며, 그 창백함에 섬세함’을 준다고 생각했다. 비록 ’저명한 숙녀(A Lady of Distinction)’란 저자가 쓴 [우아함의 거울(The Mirror of the Graces)]에서는 여성들이 ‘거짓 염료로 만든 거짓 흰 피부에 헛된 정맥’을 그린다며 1830년대의 그러한 관습을 비난했지만, 유행에 민감한 여성들은 흔히 그렇게 보이기 위해 화장품을 사용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만들 수 없고 오로지 자연에서 제공하는 것으로만 만들 수 있었던, 그 당시 화장품의 한계도 문제였다. ‘진주와 같은 백색’으로 광고한 금속 산화물의 응용품인 페인트의 사용은 가장 큰 분노를 일으켰던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해 강력히 규탄했다. 그러나 그러한 화장품은 또한 창백함을 유발하는 쇠약성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름다움의 기술(Art of Beauty)]에서는 비스무트, 납 또는 주석의 추출물로 만드는 흰색 페인트가 ‘……폐에 서서히 작용함으로써 질병을 유발하도록 피부 모공을 통해’ 뚫고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폐결핵에 관한 논문(A Treatise on Pulmonary Consumption)]에서는 ‘화장품의 화학물질은……매우 직접적으로 죽음의 사자를 돕는다’고 격렬히 주장했다. 이러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화장품은 여성의 몸단장에 중요하지만, 논쟁의 여지가 있는 요소로 남았다.

또한 화장품의 공공연한 사용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는 아름다움이 여성 미덕의 자연적인 본성이라는 관념에 묶여 있었다. 결과적으로 화장품의 기만 없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향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결핵은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을 달성하는 동시에 도덕적 성격을 나타내는 방식이 되었다.

구부정한 어깨

감상적 아름다움의 전통은 얼굴을 넘어 품성이 표현되는 전체로서 여성의 외모를 결부시켰다. 따라서 그 기간의 유행은 결핵 환자의 체형을 모방했다. 드레스의 상체는 더 길게 보이기 위해 장식했다. 어깨를 좁게 강조하고, 허리 부분을 강조하고 길게 보이게 하려고 장식 요소를 활용했다. 무거운 코르셋은 어느 정도 결핵 환자의 상체처럼 섬세하고, 얇고, 가녀리게 보이게 만들었다. 드레스 상체는 몸에 꼭 맞았고, 진동(armholes: 옷의 몸판과 소매를 연결하는 부분)은 어깨보다 낮게, 비스듬히 자르고, 소매는 꽉 끼게 하여 착용자가 팔을 똑바로 들어 올리지 못하게 했다. 어깨 처짐 스타일(drop-shouldered style)은 결핵 환자의 굽은 뒷모습을 모방해 어깨를 구부정하게 취하도록 강제했다.

감상적인 드레스에서 허리 그리고 실제로 전체적인 부분에서 몸통은 앞선 10년 동안보다 더 좁아졌다. 그 결과, 코르셋은 스타일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 남게 되었다. 문학에 담긴 행실과 아름다움에 관한 이상적인 생각은 작은 허리와 어깨 곡선이 결합한 부드러움, 섬세함, 연약함, 겸손함이며, 이는 분명 중산층 및 상류층 여성에게 기대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특징은 결핵으로 인한 쇠약의 영향과 일치했다.

엉덩이를 앞으로 기울이고, 어깨뼈를 위로 밀어 구부린 모습을 강화한 감상주의적 스타일의 코르셋(c.1840).

그러나 화장과 마찬가지로 감상적인 스타일의 패션은 모방뿐만 아니라 이를 착용한 사람들에게 결핵을 일으키는 것으로 믿어졌다. ‘가슴의 변형’은 보통 결핵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로 평가되었는데, 이는 특히 코르셋으로 인한 신체적 변형에 해당한다. 그러나 코르셋 착용의 폐해를 지적하는 방대한 글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들은 계속해서 이를 착용했고, 1842년에 코르셋 착용에 대해 격렬히 항의했던 한 의사를 무척이나 좌절하게 했다. 그것은 ‘의사의 경고 목소리를 유행의 요구보다 우선하여 들을 것이라는 헛된 기대였다.’ [젊은 사람들을 위한 쉬운 건강법(Health Made Easy for Young People, 1845)]에서는 가슴을 ‘예쁘게 보이도록’ 동여매고, 그런 ‘끔찍한’ 코르셋을 착용하려는 여성들에게 결핵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주장했다.

구부정한 자세 또한 결핵의 지표이자 모방으로 제시되었다. 젊은 여성들은 ‘활동적이지 않고 주로 앉아서 지내는 삶의 방식은 가슴의 변형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폐를 상처 입히고, 자세를 구부정하게 하는 습관에 의해……결핵균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경고를 받았다. 1847년에는 감기와 결핵의 원인을 잘못된 여성 교육에서 찾았다. ‘창백한 표정과 구부정한 걸음걸이의 병약한 여학생은 폐 질환이라는 그녀의 운명을 예견하는 것 같았다.’ 중산층 및 상류층 여성은 양육 방식으로 인해 남자보다 결핵에 더 취약한 것으로 여겨졌다. 존 트리커 컨퀘스트(John Tricker Conquest)와 같은 일부 의사는 그러한 질병을 일으키는 ‘숙녀와 같은’ 양육 방식에 혐오감을 표현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숙녀처럼”이라는 끔찍한 단어는 체육 교육에 전념해야 하는 중산층과 상류층의 불쌍한 소녀들을 따라다니다 마침내 변형과 질병의 희생자로 만든다……패션은 폭정의 구호다.’

질병이 성품을 표현한다는 생각이 감상적인 문화 전체와 결합할 때, 결핵이 어떻게 아름다움과 패션에 대한 대중적 이상을 침범할 수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결핵은 점진적으로 긍정적인 연관성을 잃어갔다. 산업화한 영국의 빈민가에서 질병의 확산,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인식의 증가, 그리고 도덕적 허물을 결핵과 결부시킨 일련의 연구들은 모두 결핵을 둘러싼 생각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일단 이러한 연관성이 자리 잡자, 그 질병은 더 이상 여성에게 수용 가능한 것으로 합리화될 수 없었다. 1840년대 말까지 결핵은 빈곤과 문란함에 의해 오명을 썼지만, 그 세기의 끝에서 그 너머로까지 이어졌다.

19세기 후반 동안, 그 질병에 관한 하층민의 인식을 지배한 개념은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점차 적용되었다. 이는 결핵이 불결하고, 혼잡한 집과 근로 환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도덕적, 위생적 결점의 결과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특히 19세기 중반 공중 보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점차 질병에 대한 지배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질병에 대한 세균 이론의 도입과 수용은 이러한 위생 모델을 그것의 도덕적 함의와 함께 결핵에 대한 유일한 설명으로 만들었다. 건강은 생물학적 쇠락에 대한 두려움에 직면하여 바람직한 목표가 되었으며, 결핵에 대한 낙인과 사회 전반에 의해 채택된 대처 전략의 변화로 이어졌다. (번역 김명호)

* 글쓴이 캐롤라인 A. 데이(Carolyn A. Day)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퍼먼 대학교의 조교수이며 [세련된 결핵: 미와 패션과 질병의 역사(Consumptive Chic: A History of Beauty, Fashion and Disease)] (Bloomsbury, 2017).의 저자이다.

*번역 원문
https://www.historytoday.com/carolyn-day/consumptive-chic-when-tuberculosis-was-height-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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