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이언스 - 왜 그리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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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과학책들을 보면 어김없이 고대 그리스에서 대장정의 첫 삽을 뜬다. 고대 그리스가 뭐가 그리 잘났길래 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힘찬 연어들처럼 과학책들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정말 그리스 이전에는 과학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몇 권의 과학책을 본 깜냥으론 그리스 이전에도 하늘을 관측했고 언제 일식과 월식이 일어날지를 예상했으며 수준 높은 수학실력으로 피라미드 같은 간지나는 건축물도 짓고 그랬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왜 유독 그리스만 과학의 씨발, 아니 시발점으로 꼽히는 걸까?

옛날 옛적 호랑이가 말보로 피던 시절엔 잘나갔지만 
지금은 유럽연합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해 버린 그리스

과학 이전에 먼저 기술이 있었다. 조상님들은 주위에 널려있던 돌맹이나 나무 막대기를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용했던 기술의 종류에 따라 각각 석기, 청동기, 철기로 시대를 구분한다. 이처럼 모든 시대에 걸쳐 어떤 형태로든 기술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조상님들이 어떤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그런 도구들을 만들어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철에 열을 가함으로서 원자들의 배열이 달라진다는 화학적 성질을 한큐에 파악하여 철을 이용했을 리는 만무하다.

초기의 과학과 기술은 서로 연관이 없이 발생했고 다른 개념이기도 하다. 사람 말고도 유인원 같은 몇몇 동물들도 초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침팬지에게 과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과학은 기술 너머의 단계이며, 적어도 설명과 이해를 위한 시도를 요구한다. , 과학은 기술보다 더 세련된 활동이다. 사람들은 기술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와 무엇이 일어날지를 알게 되지만, 과학을 통해서는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론과 설명을 가지게 된다.

과학은 단순하게 적용되는 상식이 아니다. 과학은 처음 시작될 때부터 상식과 꽤 동떨어져 있었다.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지고, 움직이는 물체 위에 있다면 뒤로 나뒹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또한 즉각적인 물질적 이익을 거둔다는 뜻에서 보면 과학은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다. 인류는 길고 고단한 화학의 발전 없이도 일찍부터 철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주변 환경을 이익에 맞도록 다루는 능력인 기술은 상대적으로 쉽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해야 하는 과학은 그렇지 않다. 최초 사회가 미신과 인격화된 신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로부터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과학은 자연스러운활동의 산물이 아니다.

그러면 인류는 왜, 어떻게 해서 이렇게 번거로운 과학적 사고를 탄생시킬 수 있었을까?

많은 수의 진흙판들이 이른바 메소포타미아와 지금의 이라크(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

그리스 이전의 사회가 기술적이고 수학적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이미 세련된 수 체계와 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으며 달력을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훌륭한 천체 관측자이기 하였다. 몇몇의 진흙판은 수학적으로 천문 예측을 하면서 천체 운동을 상세하고 정확하게 관측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 이전의 과학을 찾는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바빌로니아 천문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예부터 사람들은 자연현상이 왜 발생하는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삶에 도움이 되는지는 알았다. 과학이 있기 전의 사회에서는 태양의 움직임에 대해 신이 수레를 타고 하늘을 냅다 가로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초기의 많은 우주론에서는 우주를 반구라고 생각했다. 평평한 대지 위에 반구의 하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양은 저녁에 사라지고 아침에 다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밤 동안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는 수수께끼였다. 이 수수께끼가 바로 신화의 주제였다. 고대 사회에서는 태양이 지평선의 어느 지점에서 언제 떠오르는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태양이나 그것의 운동과 관련한 어떠한 과학적인 설명도 그들의 한계 너머에 있었다.

우주론은 우주의 구조를 논하는 학문이었고, ‘천문학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기록하며 
그것을 토대로 천문현상을 예측하는 학문이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사실은 천문학이 우주론과 전혀 별개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대단히 꼼꼼하게 천문 현상을 기록했으며 일식과 월식 등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우주론은 하늘의 여신이 땅 위에 엎드려 있고 그의 몸에 별이 붙어 있으며...”라는 식의 환타지 소설스러움에 머물러 있었다. 따지고 보면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어떻게 생겼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매일매일 천체를 보며 꾸준히 관측하여 그 기록이 쌓이면 대부분의 천문 현상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문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계산이 잘 들어맞는 우주 모형이지 상식과 경험에 맞는 모형이 아니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하늘을 관찰하고 천문현상을 예측하는데 아주 능숙했다. 하지만 그들은 신화와 시로서 천체를 설명할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천체에 대한 이론이 없었기에 천문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들의 예측은 천체를 관측한 자료로부터 추정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일식이 1, 3, 5, 7번째 해에 일어났다면, 다음 일식이 9번째 해에 일어날 것이라는 식이다. 이러한 예측을 하는데 천체의 메커니즘을 알 필요는 없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가 아니라 언제일어나는 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들은 과학으로서의 천문학이 아닌 천문 예측의 기술을 가졌던 것이다. 그들은 순전히 신화적인 우주 기원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 과학은 사실 그리스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비옥했던 소아시아의 지중해 연안에서 기원했다. 특히, 처음에는 밀레투스라는 도시에서 시작하여 이오니아라 불리는 지역의 여러 도시로 퍼져나갔다. 기원전 7세기경 그리스 문명의 중심은 이오니아였다. 이오니아는 2세기 동안 그리스 본토보다 도시화나 경제적인 면에서 우월했다. 최초의 자연철학자 대부분은 이오니아 출신이었다.

그리스 사회는 사람들이 자연의 본성과 같은, 먹고 사는 일과는 전혀 무관한 잉여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풍족한 사회였다. 게다가 그리스는 독창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지적인 자유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는 단일 종교가 아니었고 성직자의 공식적인 직함도 없었다. 그래서 그리스 사회는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었고 종교관에 대한 토론도 활발했다. 이에 반해 바빌로니아 사회는 성직자가 통치했을 뿐만 아니라 계층화가 심화되어 있었다는 의미에서 위계가 분명했다.

지적인 자유로움은 생각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요소다. 덕분에 그리스 철학은 자연 현상에서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원인을 배제할 수 있는 생각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고 합리적 사고를 통해 자연현상을 예측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즉 자연을 연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정의한 것이다. 신화적 자연관으로는 이미 일어난 개별적인 사건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예측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연구할 수가 없다.

고대 그리스 단어인 코스메오cosmeo'는 질서 또는 정리를 의미하는 단어로 현대 영어의 여러 단어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뜻 외에도 질서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탐미한다는 의미 역시 가지고 있다. 사실 과학의 기원에 상당히 중요한 요소는 그리스 사람들 스스로 잘 정돈된 장소인 코스모스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자연과 초자연을 처음으로 구분했으며 우주는 완전히 자연적인, 질서를 가진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문현상은 신의 변덕 따위에 의해 마구잡이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낙천주의자인 초기 그리스인들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들에게 우주의 질서는 인간에 의해 발견되고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우주를 문자와 숫자로 성공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리스의 자연철학에도 한계는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삼기보다는 사색을 통해 학설을 세워나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의 자연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느냐였다.

물론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과 대중이 무신론자는 아니었다. 알다시피 그리스인들은 제우스와 포세이돈 같은 신들로 가득 찬 훌륭한 신화를 후손에게 남겼다. 그리스 이전 사회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대중들이 믿는 신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변덕쟁이 신이었다. 천둥과 번개 같은 자연현상은 신들이 인간에게 화를 내거나 그들끼리 한판 붙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 과학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의 역사이다.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생각은 후대 역사와 당시 그리스 사회 모두에 영향을 주었지만 그들의 관점은 당시 그리스 사람 전체의 관점은 아니었다. 대중들은 신과 신화에 대한 옛 관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배경에 대항해, 어쨌든 과학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스에서는 특이하게도 현상을 탐구하는 철학적 사고가 사회적, 경제적 목적 없이 나타날 수 있었다. 과학적인 이론의 기원, 그리고 그 자체가 목적인 자연 탐구는 훗날 자연철학이라 불리게 된다. 수학과 천문학 형태의 과학은 최초 문명들 모두에서 독립적으로 여러 번 발생했지만, 자연철학은 오직 그리스에서만 기원했다. 이런 이유에서 지금의 우리가 과학을 이야기할라 치면 엄마에게 또로로 달려가는 어린애 마냥 그리스로 돌아가는 것이다.

서양과학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by self_fish | 2012/01/29 01:38 | ▶ 호모 사이언스 | 트랙백 | 덧글(3)

비전공자라는 편견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 중에서, 게다가 그림이나 음악과 같은 분야에서 과학에 취미를 갖고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아마 굉장히 드물텐데 그런 멸종 위기의 동물과도 같은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나다. 난 디자인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면서 과학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어서 왠만한 중소도서관의 책장에 꽂혀있는 과학서보다 많은 과학서를 소장하고 있다.

대학에 들어서면서 생긴 과학이란 취미생활은 이제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이토록 재미있는 과학을 남들도 함께 즐겼으면 하는 복음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더불어 왜 학교에선 과학을 그토록 재미없게 가르쳤을까 하는 원망도 한몫 했으리라.

현재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있는 것들은 이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과학사를 딴지일보처럼 시장바닥스런 단어로 풀어보고, 재밌는 과학기사를 소개하고, 카툰과 과학을 접목시키고, SF소설 리뷰와 과학을 접목시켜 보고 있다. 또한 직업적으로도 그동안 여러 과학책 삽화 작업을 하며 느꼈던 문제점들과 과학책에서의 그림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이런 나의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신생 과학 교육자 단체에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통섭적인 과학 교육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려 하며, 그래서 과학에 관심있는 일러스트 작가의 참여를 원한다는 소식이었다. 난 기꺼이 그 자리에 참석하여 그간 현재의 과학교육과 우리나라의 과학문화, 그리고 내 전공분야라 할 과학 출판물의 문제점 등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들을 풀어놓았다. 다행히 참석했던 분들은 나의 문제의식에 동의해 주셨고 많은 관심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난 아주 정반대의 상황과 마주쳤다. 현재 모 어린이 과학 월간지에 연재하고 있으며 이 블로그에도 올리고 있는 호모 사이언스의 포털 연재가 거부당한 일이다. 잡지에는 호모 사이언스카툰만 실리고 있지만 해당 잡지의 편집부에서는 블로그 버전인 카툰에 칼럼이 붙은 완성형으로 포털에 연재를 건의하였다. 당연히 현재 국내에는 이런 컨텐츠가 없기 때문에 포털 쪽에서도 초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몇 일전 결국 내가 과학 관련자가 아니란 이유로 연재를 거부당했다.

호모 사이언스는 두 가지 버전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잡지에 실리는 것은 잡지의 연령층이 낮고 지면의 한계상 카툰과 함께 3,4줄의 짧은 글이 붙는다. 하지만 내 블로그에 올리는 호모 사이언스에는 카툰이 다루고 있는 소재에 관해 여러 책들에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모아 설명하는 글이 붙어있다. 한 편의 호모 사이언스를 작업하는데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는 정확한 정보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과학서들을 읽으며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글, 그림 모두 맘에 들지만 단지 과학 관련자가 아니기 때문에 안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내 의견을 경청하며 관심과 호의를 표명하였지만, 비전문가들에게서는 전문가가 아니라며 거절을 당한 것이다.

참 인생 재밌게 돌아간다.    

by self_fish | 2012/01/25 18:54 | 비상구 | 트랙백 | 덧글(29)

육아만감- 인내

by self_fish | 2012/01/20 20:28 | ▶ 육아만감 | 트랙백 | 덧글(4)

니콜라우스 스테노는 어디서 튀어나온 듣보잡일까? - 2부

17세기 과학혁명의 물결은 지구과학으로도 흘러들었다. 그리하여 이제 지구 자체도 연구 대상이 되었고 지구의 기원은 풀어야할 스도쿠 문제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셜록 홈즈라도 사건을 조사하려면 단서가 있어야 하듯이 지구의 기원을 연구하려면 바탕이 되는 어떤 단서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자료라고 해봐야 성경의 창세기 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초창기 지구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가설은 창세기라는 앞마당 안에서만 뛰어놀 수밖에 없었다.

연구를 시작한 자연학자들의 눈에 점차 곤혹스러운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조개나 고대 생물처럼 생긴 돌들이 발견되는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이 현재에는 볼 수 없는 생물이었고 바다생물처럼 생긴 돌들이 쌩뚱맞게도 산꼭대기나 내륙 깊은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는게 아닌가.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창세기가 말하고 있는 노아의 홍수 밖에는 없었다. 옳거니! 그러나 대홍수는 어떻게 조개나 생물의 뼈 들을 돌처럼 만들며, 또 이것들이 어떻게 깊은 땅속에 묻히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더구나 일부지역에서 엄청나게 많은 조가비들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한차례의 노아의 홍수로는 이런 결과는 만들어 낼 수 없어보였다. 당시엔 지구의 창조는 당연히 6,000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토록 짧은 기간에 산이 불쑥 생기고 바닷물이 바짝 말랐다는 이야기는 SF소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화석에 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은 바다 생물과 비슷하게는 생겼지만 그건 그냥 땅속에서 자란 특별한 돌이라고 것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생활하던 스테노 형님은 피렌체 메디치가의 페르디난도 2세가 불러서 해안에서 잡은 상어를 해부하게 되었다. 스테노는 해부를 통해 상어의 이빨이 당시 약물로 쓰이던 혀돌(tongue stone)이라는 돌과 너무도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연히 그 혀돌은 땅속에서 자라거나 폭풍과 함께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혀돌

그러나 스테노 형님은 이런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해부학자로서 사람과 동물의 몸을 통해 몸 속에 있는 기관이나 조직은 제각기 맡은 기능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연하게 완전히 똑같은 이빨이나 조가비가 만들어질 순 없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들이 단단한 암석 속에 묻히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결국 스테노는 쿨하게 해부학 연구를 접고 화석을 연구하는데 온 시간을 바친다. 흥미를 느낀 갑부 페르디난도 2세 역시 스테노의 연구 비용 전액을 지원해 주었다. 그리하여 노력 끝에 상어 이빨과 내륙 깊숙한 암석층에서 발견된 화석 잔해물에서 드러난 특징들을 비교해 그 잔해물이 상어의 이빨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1667년 출판한 [해부한 상어의 머리]에 실린 삽화...
스테노 형님이 해부한 것이 정말 상어였을까?! -_-

이후 스테노는 지질학의 기초가 담겨있는 그의 걸작 [자연적으로 고체에 파묻힌 고체에 관한 논문의 서문]을 발표하였다. 이 책에서 스테노는 수정과 같은 무기물 고체와 조개나 뼈와 같은 유기물 고체의 생성이 다르다는 데 주목했다. 그래서 화석이 묻혀 있는 암석이 본래 연한 퇴적물이었으나 조개나 뼈가 묻힌 뒤 오랜 세월에 걸쳐 굳어지면서 단단한 암석이 되었음을 알아냈다. 스테노가 제기한 퇴적암 개념은 지질학 발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699년 출판된 [자연적으로 고체에 파묻힌 고체에 관한 논문의 서문]
연구비를 대준 페르디난도 2세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박혀있다.

스테노는 이러한 퇴적암 개념을 훨씬 규모가 큰 지층에도 똑같이 적용했다. 그리하여 지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층층이 연속적으로 퇴적된 것임을 알아냈다. 맨 아래 있는 지층이 가장 오래된 지층이며, 퇴적물은 평평하게 쌓여 수평층을 이루고, 퇴적물은 옆으로 넓게 퍼져 나가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기울거나 절단되고 겹친 암석층은 지각이 움직였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자연적으로 파묻힌....]에 실려있는 토스카나 지역의 지층이 쌓이고 지형이 
형성된 단계를 보여주고 있는 다이어그램

그러나 스테노 형님 역시도 한낱 인간이었다. 시대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성경의 그늘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는 토스카나의 지층을 관찰해 육지가 바닷물로 뒤덮인 적이 최소 두 번이고, 그 중 적어도 한번은 지층이 기울면서 바뀌었으리라는 결론에서 그의 연구는 끝을 맺는다.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스테노는 자신이 연구한 과학은 창세기의 부족한 기록을 메우는 길이라 여겼다. 스테노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는 모두 그랬다. 우리 현재 본좌라 일컫는 대부분의 자연과학자들은 종교인이었고 그래서 그들이 발표한 자연과학서는 성경의 내용을 보완하고 있었다. 둘 다 신학자들이 쓴 저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론이 창세기를 보완하는데 쓰였다고 해서 창조학자라고 부르는 것은 한마디로 가당찮은 이야기다. 그렇게 치면 19세기 전까지 대부분의 생물학자, 지질학자들은 창조학자로 불러야 할 것이다.

이후 린네니 뷔퐁이니 퀴비에 등과 같은 생물학자와 지질학의 본좌들이 서로의 머리채를 붙잡고 지구의 나이와 기원에 대해, 자연사에 대해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스테노의 이러한 업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18세기에 들어서며 현존하는 바다와 멀리 떨어진 곳에도 화석이 있다는 것과, 이것이 한 때 살아 있었던 생물체의 잔해라는 것은 폭넓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형님은 학자로서 한창 이름을 떨치던 때에 일부 동료 과학자들에게 크게 낙담을 하고, 1667년 과학자의 길을 스스로 그만두고 성직자가 되었다. 그리곤 사제로서 독일 북부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다 1686년에 48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해부학자로서 해부학 연구를 통해 근육, 심장, 뇌에 관한 통설을 뒤엎었으며, 지질학의 창시자로서 암석층을 살펴서 지구의 역사를 연구할 수 있는 과학적 원리들을 처음으로 주장한 니콜라우스 스테노 형님은,

결코 듣보잡이 아니다.


-참고 및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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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헉슬리 저곽명단 역, [위대한 박물학자], 21세기 북스, 2009.
졸 쉐켈포드 저강윤재 역, [현대 의학의 선구자 하비], 바다출판사, 2006.
[현대 과학의 풍경], 궁리, 2008.
존 그리빈 저강윤재-김옥빈 역, [과학], 들녘, 2004.
 http://www.ucmp.berkeley.edu/history/steno.html



덧붙여....

예전에 포스팅했던 지구의 나이에 관한 글. 시간적으로 보아 스테노 형님 사후, 뒤이어서 일어난 일이니 읽으면 재밌을듯.

by self_fish | 2012/01/13 20:41 | 자료열람실 | 트랙백 | 덧글(9)

니콜라우스 스테노는 어디서 튀어나온 듣보잡일까?

구글 로고가 또 바꿔어 있어서...

구글은 111일에 니콜라우스 스테노 탄생을 기념하는 로고를 대문에 달아 놓았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 생소했을 그의 이름을 보며 그냥 그 동네에서 유명한 사람인갑다 하며 넘겼을 것이다. 문제는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그가 누군지 클릭했다가 무려 위대한 창조학자라고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이름도 생소한 형님은 이 머나먼 이국 땅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구글에서 올린 프로필을 보면,

니콜라스 스테노는 자신이 직접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론을 수립해 과학적 방법을 연구에 도입한 지질학자로 알려졌으며, 지층의 누적에 대한 이론을 발표해 층서학의 아버지로도 불립니다. ’

라고 떡하니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말 대로면 위대한 창조학자가 아니라 창조학을 깨부순 위대한 지질학자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던가. 도대체 이런 아이러니한 프로필을 가지고 있는 이 형님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형님의 이름은 라틴어로 니콜라우스 스테노(Nicolaus Steno, 1638~1686)이며 코펜하겐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행색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명 개천 출신의 용으로 거듭나며 우선은 천부적인 해부능력을 바탕으로 해부학자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다.

17세기의 유럽은 갈릴레오가 뿌려놓은 과학의 씨앗들이 꽃을 피우며 과학혁명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시기였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데카르트는 세상 만물은 마치 기계처럼 움직인다는 기계론을 들고 나오며 시대 트렌드를 만들었다. 이러한 기계론 열풍은 당연히 인간과 동물은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우리 인체의 신비를 설명하는 데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특히 기계론의 아빠라 할 수 있는 데카르트는 자기 분야도 아니면서 아무데나 기계론의 잣대를 갖다 대며 똥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

17세기 초의 의학계에는 훌륭하신 하비형님이 나타나셔서 아직까지도 의학계의 수학의 정석 같은 구닥다리 갈레노스의 이론들 중 심장과 혈액순환에 관한 내용을 버전업시키고 있었다. 즉 하비는 심장은 근육질이고 강력한 심장 근육의 수축에 의해 피가 동맥으로 뿜어져 나간다고 하였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심장이 근육 펌프라는 하비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심장은 피가 증발할 때까지 피를 가열하는 수동적인 기관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증발된 피는 심장을 부풀리면서 동맥에 압력을 가하며, 이 압력이 맥박의 원인라고 본 것이다.

기계론이 비록 시대적 트렌드이긴 했지만 이 이론은 교회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기계론 말마따나 세상 만물이 능동적인 자아를 가지고 알아서 움직인다면 신은 실업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계론에 관한 논쟁은 위에 적은 것처럼 데카르트가 심장을 가지고 떠드는 바람에 하비까지 끌어들이게 된다. 데카르트의 심장에 대한 주장은 하비의 혈액순환 개념을 변용해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하비가 정립한 개념을 제멋대로 바꾸어 써댔다. 하비의 이론은 데카르트와 달랐지만 그는 여러 가지 개인사정으로 데카르트와 말싸움할 시간이 없었고 결국 하비형님은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만다.

이런 기계론 추종자들의 분야를 넘나드는 참견은 스테노 형님의 시대에 까지 계속되었다. 뛰어난 해부학자인 스테노는 해부를 통해 심장이 신축성 있는 섬유들의 뭉치이며 누구들 말마따나 생기를 불어넣으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기계론이 사회, 과학 전반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심장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혈기 왕성한 한창 나이였던 스테노 형님은 하비 형님처럼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1665년 파리 강연을 통해 기계론자들에게 뻐큐 한방을 찰지게 날려 주신다.

파리 강연은 뇌에 관한 것이었다. 뇌 조직은 연하고 부드러워 해부하기 무척 어려웠다. 따라서 뇌의 구조와 운동에 관한 추측이 난무했고 당연히 참견쟁이 데카르트 역시 일찌감치 한마디 거들었다. 데카르트는 영혼이 송과선 안에 들어앉아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직의 끈을 비틀고 돌리고 잡아당기면서 신체를 조절한다고 주장했다당연히 데카르트의 이런 주장은 해부학적 관찰이 아닌 송과선에 앉아있는 영혼의 연역적 추론을 통해서였다.

철이가 앉아있는 곳은 마징가의 송과선이다!


 

스테노는 해부를 통해 알게 된 뇌의 구조에 관해 발표하며 송과선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음을 밝혀내어 기계론자들의 뇌 이론에 냉수마찰을 해준다. 그러면서 스테노 형님은 과학은 자연을 관찰한 사실을 근거로 삼아야하며 제하무리 명쾌하다고 할지라도 순전한 추론을 근거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카리스마 있게 경고하였다.

스테노 형님의 이런 뛰어난 해부학적 지식은 이후 지질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는데 귀중한 시발점을 만들어 준다


(예상보다 길어져서 2부로....)

by self_fish | 2012/01/12 18:02 | 자료열람실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고효율 풍차

풍차의 3가지 기본유형

보통 풍력 발전에 사용되는 풍차의 회전축은 수평이다. 이러한 수평축형 풍차(Horizontal Axis Wind Turbines:HAWT)는 발전 효율이 뛰어나지만 가까이 늘어세울 경우 바람에 의한 간섭으로 인해 효율이 약화되는 단점이 있다. 그 결과 수평축형 풍차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선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수평축형 풍차의 경우 제조비나, 소음, 경관에 대한 문제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다비리(J. Dabiri) 교수는 회전축이 수직인 풍차(Vertical Axis Wind Turbines:VAWT)에 착안해, 실물의 풍차 6대를 사용해 풍차의 간격과 배치에 의한 발전 효율의 차이를 조사하는 야외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수직축형은 수평축형보다 단독 효율은 뒤지지만, 풍차끼리의 간섭이 적고 같은 면적에 설치할 수 있는 수가 대폭 늘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서로 이웃하는 풍차의 회전 방향을 반대로 하면 효율은 더욱 개선되어 단위 면적당 발전량은 수평축형의 10배에 이른다고 한다.

수직형 풍차는 수평형 풍차의 단점을 보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Journal of Renewable Sustainable Energy에 실렸으며 월간 뉴턴 201112월호의 기사에서 발췌, 편집하였습니다.

by self_fish | 2011/12/27 01:03 | 자료열람실 | 트랙백 | 덧글(2)

고 녀석 맛나겠다 (まえうまそうだな, 2010)- 내가 니 밥이다!

감독_후지모리 마사야

어린 시절 아버지가 권해준 고기를 손가락 쪽쪽 빨아가며 맛있게 먹었는데 알고보니 그 육질 좋은 고기의 정체가 어제까지도 함께 뚝방을 누비던 누렁이였다는 식도를 죄여오는 사연이 종종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곤 한다.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의 경계가 애매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 시골 곳곳에서 벌어진 이런 비극은 살기위해 먹어야 하는 존재로서 짊어지고 가야할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숙명을 외면하고 단지 동심이라는 이유로 다수의 애니메이션이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어깨동무하며 놀아제끼는 빨갱이 같은 사회를 그리고 있다. 이는 아이들과 철없는 어른들로 하여금 먹이사슬의 위계질서를 망각케 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예로 최근 10년간 호랑이와 같은 거대 육식동물을 애완동물로 키우다 에피타이져 신세가 되었다는 해외토픽 기사의 증가는 이런 빨갱이 같은 애니메이션의 작품 수와 분명 연관이 있을 것이다! 당 영화는 이런 생태학적 만행에 일침을 가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은 아무리 불알친구라도 자칫하단 골로 갈 수 있으니 긴장하며 지내라는 바람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원작은 [고녀석 맛있겠다]라는 동화책으로서 동화 일러스트 작가 미야니시 다츠야의 단순한 형태와 원색들로 그려진 공룡 그림들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당연히 얘기지만 원작이 큰 인기를 누렸기 때문에 이렇게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것이다

동화책 [고녀석 맛있겠다]는 티라노사우르스가 주인공으로 열연하고 있는 시리즈 중 하나로 현재 국내에는 5권이 출간되었다. 애니메이션은 이 시리즈의 이야기들을 모두 엮어서 각색한 것이다. 하지만 동화책의 내용은 하나 같이 뛰어넘을 수 없는 주식(主食)의 벽 앞에서 이별을 맞이하는데 반해 애니메이션은 아쉽게도 이를 모두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해피하게 편집해 놓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문제는 동화책과는 너무 다른 그림체이다. 작가의 개성 넘치는 색과 형태가 너무나 진부해 보이는 그림체로 바뀌어져 원작에 매력을 느낀 이라면 선뜻 이 애니메이션을 선택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뚜껑을 열어 보면 애니메이션의 그림체 역시 각각의 공룡의 특징까지 감안한, 공들여서 그린 그림으로 원작과의 이질감은 금새 사라지고 애니메이션 나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작정하고 작품의 마스코트 역할을 하고 있는 아기 안킬로사우르스는 정말 귀여워서 언제 잡아먹힐지 기대하게 만들지만 안타깝게도 잡아먹히지 않는다. 그리고 동화책에선 볼 수 없는 육식공룡들의 아크로바틱한 액션은 본의 아니게 아이와 함께 시청할 수밖에 없는 아빠들의 지루함을 한방에 날려 줄 것이다.

by self_fish | 2011/12/24 00:11 | 영화대담실 | 트랙백 | 덧글(3)

111219

까페에서 잠든 윤아. 

by self_fish | 2011/12/20 23:44 | ▶ 육아만감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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