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1월 29일
호모 사이언스 - 왜 그리스일까?

대부분의 과학책들을 보면 어김없이 고대 그리스에서 대장정의 첫 삽을 뜬다. 고대 그리스가 뭐가 그리 잘났길래 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힘찬 연어들처럼 과학책들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정말 그리스 이전에는 과학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몇 권의 과학책을 본 깜냥으론 그리스 이전에도 하늘을 관측했고 언제 일식과 월식이 일어날지를 예상했으며 수준 높은 수학실력으로 피라미드 같은 간지나는 건축물도 짓고 그랬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왜 유독 그리스만 과학의 씨발, 아니 시발점으로 꼽히는 걸까?

옛날 옛적 호랑이가 말보로 피던 시절엔 잘나갔지만
지금은 유럽연합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해 버린 그리스
과학 이전에 먼저 기술이 있었다. 조상님들은 주위에 널려있던 돌맹이나 나무 막대기를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용했던 기술의 종류에 따라 각각 석기, 청동기, 철기로 시대를 구분한다. 이처럼 모든 시대에 걸쳐 어떤 형태로든 기술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조상님들이 어떤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그런 도구들을 만들어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철에 열을 가함으로서 원자들의 배열이 달라진다는 화학적 성질을 한큐에 파악하여 철을 이용했을 리는 만무하다.
초기의 과학과 기술은 서로 연관이 없이 발생했고 다른 개념이기도 하다. 사람 말고도 유인원 같은 몇몇 동물들도 초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침팬지에게 과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과학은 기술 너머의 단계이며, 적어도 설명과 이해를 위한 시도를 요구한다. 즉, 과학은 기술보다 더 세련된 활동이다. 사람들은 기술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와 무엇이 일어날지를 알게 되지만, 과학을 통해서는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론과 설명을 가지게 된다.
과학은 단순하게 적용되는 상식이 아니다. 과학은 처음 시작될 때부터 상식과 꽤 동떨어져 있었다.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지고, 움직이는 물체 위에 있다면 뒤로 나뒹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또한 즉각적인 물질적 이익을 거둔다는 뜻에서 보면 과학은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다. 인류는 길고 고단한 화학의 발전 없이도 일찍부터 철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주변 환경을 이익에 맞도록 다루는 능력인 기술은 상대적으로 쉽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해야 하는 과학은 그렇지 않다. 최초 사회가 미신과 인격화된 신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로부터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과학은 ‘자연스러운’ 활동의 산물이 아니다.
그러면 인류는 왜, 어떻게 해서 이렇게 번거로운 과학적 사고를 탄생시킬 수 있었을까?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그리스 이전의 사회가 기술적이고 수학적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이미 세련된 수 체계와 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으며 달력을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훌륭한 천체 관측자이기 하였다. 몇몇의 진흙판은 수학적으로 천문 예측을 하면서 천체 운동을 상세하고 정확하게 관측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 이전의 과학을 찾는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바빌로니아 천문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예부터 사람들은 자연현상이 왜 발생하는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삶에 도움이 되는지는 알았다. 과학이 있기 전의 사회에서는 태양의 움직임에 대해 신이 수레를 타고 하늘을 냅다 가로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초기의 많은 우주론에서는 우주를 반구라고 생각했다. 평평한 대지 위에 반구의 하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양은 저녁에 사라지고 아침에 다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밤 동안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는 수수께끼였다. 이 수수께끼가 바로 신화의 주제였다. 고대 사회에서는 태양이 지평선의 어느 지점에서 언제 떠오르는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태양이나 그것의 운동과 관련한 어떠한 과학적인 설명도 그들의 한계 너머에 있었다.

우주론은 우주의 구조를 논하는 학문이었고, ‘천문학’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기록하며
그것을 토대로 천문현상을 예측하는 학문이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사실은 천문학이 우주론과 전혀 별개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대단히 꼼꼼하게 천문 현상을 기록했으며 일식과 월식 등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우주론은 “하늘의 여신이 땅 위에 엎드려 있고 그의 몸에 별이 붙어 있으며...”라는 식의 환타지 소설스러움에 머물러 있었다. 따지고 보면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어떻게 생겼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매일매일 천체를 보며 꾸준히 관측하여 그 기록이 쌓이면 대부분의 천문 현상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문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계산이 잘 들어맞는 우주 모형’이지 ‘상식과 경험에 맞는 모형’이 아니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하늘을 관찰하고 천문현상을 예측하는데 아주 능숙했다. 하지만 그들은 신화와 시로서 천체를 설명할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천체에 대한 이론이 없었기에 천문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들의 예측은 천체를 관측한 자료로부터 추정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일식이 1, 3, 5, 7번째 해에 일어났다면, 다음 일식이 9번째 해에 일어날 것이라는 식이다. 이러한 예측을 하는데 천체의 메커니즘을 알 필요는 없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왜’가 아니라 ‘언제’일어나는 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들은 과학으로서의 천문학이 아닌 천문 예측의 기술을 가졌던 것이다. 그들은 순전히 신화적인 우주 기원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 과학은 사실 그리스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비옥했던 소아시아의 지중해 연안에서 기원했다. 특히, 처음에는 밀레투스라는 도시에서 시작하여 이오니아라 불리는 지역의 여러 도시로 퍼져나갔다. 기원전 7세기경 그리스 문명의 중심은 이오니아였다. 이오니아는 2세기 동안 그리스 본토보다 도시화나 경제적인 면에서 우월했다. 최초의 자연철학자 대부분은 이오니아 출신이었다.
그리스 사회는 사람들이 자연의 본성과 같은, 먹고 사는 일과는 전혀 무관한 잉여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풍족한 사회였다. 게다가 그리스는 독창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지적인 자유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는 단일 종교가 아니었고 성직자의 공식적인 직함도 없었다. 그래서 그리스 사회는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었고 종교관에 대한 토론도 활발했다. 이에 반해 바빌로니아 사회는 성직자가 통치했을 뿐만 아니라 계층화가 심화되어 있었다는 의미에서 위계가 분명했다.
지적인 자유로움은 생각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요소다. 덕분에 그리스 철학은 자연 현상에서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원인을 배제할 수 있는 생각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고 합리적 사고를 통해 자연현상을 예측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즉 자연을 연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정의한 것이다. 신화적 자연관으로는 이미 일어난 개별적인 사건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예측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연구할 수가 없다.
고대 그리스 단어인 ‘코스메오cosmeo'는 질서 또는 정리를 의미하는 단어로 현대 영어의 여러 단어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뜻 외에도 질서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탐미한다는 의미 역시 가지고 있다. 사실 과학의 기원에 상당히 중요한 요소는 그리스 사람들 스스로 잘 정돈된 장소인 ’코스모스‘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자연과 초자연을 처음으로 구분했으며 우주는 완전히 자연적인, 질서를 가진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문현상은 신의 변덕 따위에 의해 마구잡이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낙천주의자인 초기 그리스인들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들에게 우주의 질서는 인간에 의해 발견되고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우주를 문자와 숫자로 성공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리스의 자연철학에도 한계는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삼기보다는 사색을 통해 학설을 세워나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의 자연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느냐’였다.
물론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과 대중이 무신론자는 아니었다. 알다시피 그리스인들은 제우스와 포세이돈 같은 신들로 가득 찬 훌륭한 신화를 후손에게 남겼다. 그리스 이전 사회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대중들이 믿는 신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변덕쟁이 신이었다. 천둥과 번개 같은 자연현상은 신들이 인간에게 화를 내거나 그들끼리 한판 붙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 과학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의 역사이다.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생각은 후대 역사와 당시 그리스 사회 모두에 영향을 주었지만 그들의 관점은 당시 그리스 사람 전체의 관점은 아니었다. 대중들은 신과 신화에 대한 옛 관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배경에 대항해, 어쨌든 과학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서양과학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 by | 2012/01/29 01:38 | ▶ 호모 사이언스 | 트랙백 | 덧글(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