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 형제와 위스콘신의 돌팔이들(1/3) by self_fish

20세기 초반까지 온갖 돌팔이들이 판치던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 특히 종횡무진 환자들을 등쳐먹고, 사법권을 희롱했던 돌팔이 라인하르트 형제단의 이야기를 번역했습니다. 당시 미국 의학계의 상황과 함께 라인하르트 형제의 활약상(?)이 흥미진진합니다. 분량이 많은 관계로 3회에 걸쳐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1906년 즈음, 위스콘신 시골에서 올라온 한 남자가 라인하르트(Reinhardt) 형제가 운영하는 위스콘신 의학기관의 밀워키 사무소를 찾았다. 그는 가슴 통증과 숨 가쁨으로 불편을 호소했고, 진료실에서 증상에 대한 놀라운 진단을 받았다. 환자를 진료한 윌리스 라인하르트는 그의 심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사실 더 나쁜 상태인, 성적 쇠약(sexual weakness)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성적 쇠약과 그 밖의 성적인 질환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는 위스콘신과 미국 전체에 만연했다. 혹은 최소한 라인하르트가 자신의 환자들을 그러한 믿음으로 이끌었다. 인쇄물과 광고로 환자들을 꽁꽁 묶어놓고 라인하르트 형제는 성적 기능장애란 진단을 안겨주었으며 불행한 환자들에게 수천 달러를 청구했다. 라인하르트 형제가 우편으로 보낸 성적 질환을 치료하는 물품은 1873년 제정된 콤스톡 법(Comstock Law: 연방 음란규제법. 역자주)을 위반한 음란 행위로 여겨져 미국 우편검사관의 조사를 받았다. 윌리스 라인하르트는 병을 진단하거나 원인을 말하지 않고 단순히 그들이 원했던 것, 즉 병의 치료법을 건네줬을 뿐이라고 조사관에게 말했다.

1910년 위스콘신 의학 연구소는 밀워키 4번가와 위스콘신 거리에 세워진 알함브라 건물에 있는 자신들의 집에 만들었다


이익을 위해 가짜 치료를 하는 것은 돌팔이 의사의 특징 중 하나다. 비록 그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돌팔이 의사를 뜻하는 ‘quack’이란 단어는 사기꾼(charlatan), 협잡꾼(mountebank) 혹은 약을 팔던 보따리 장사(itinerant seller)를 의미하는 독일어 ‘quacksalber’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는 보따리 장사의 열성적인 치료로 인한 고통으로 환자들이 오리처럼 꽥꽥 울던 것에서 기원했을 수도 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17세기에 돌팔이란 단어를 “놀라운 치료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뽐내며 의학 기술에 무식한 자”라고 기술했다. 돌팔이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당시의 의학적 지식의 한계나 훈련 부족으로 인해, 그들이 처방한 효과 없는 치료가 실제로 사람들을 도울 거라고 믿는 이들. 그리고 자신들의 치료가 유용하지 않고, 오로지 환자들의 희망이 만들어낸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을 완벽히 알고 있는 사기꾼들.

라인하르트 형제는 19세기와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의학 전문가를 주장하던 한 무리의 돌팔이들에 속했다. 비록 오늘날 의사들은 가장 엄격하게 규제하는 전문가 집단 중 하나지만, 19세기 후반 이전의 의학은 가장 뛰어들기 쉬운 분야에 속했다. 의사 면허도 없었고 직업적으로 뚜렷하지도 않았다. 거의 누구나 지붕을 올리고 가게를 차릴 수 있었고, 그래서 돌팔이와 다른 무속 치료사들로 국가 의료 지위에 거품이 발생했다. 

라인하르트 형제의 개인 의료 상담에 관한 광고 


19세기 위스콘신에서 그들은 3:1의 비율로 합법적인 의사 수를 넘어섰다. 돌팔이들은 미국의 자유시장과 민주적인 문화로 인해 자신들이 활동하기에 기름진 땅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의심스러운 의학 장치와 치료에 기꺼이 엄청난 돈을 소비할 뿐만 아니라 과학과 새로운 기술에 대한 미국인들의 솟구치는 믿음에 대한 자본화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황금 단지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갈구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돌팔이들은 온갖 희망의 무지개를 만들었다.

인간 역사 대부분에서 돌팔이들은 수련한 합법적인 의사의 수를 넘어섰다. 로마의 돌팔이들은 화장품, 안연고(eye salve)와 그리스 제조법으로 만든 사랑의 묘약을 팔았다. 반면 중세 약재상들은 흔히 의심스러운 의료 장치와 함께 다양한 수준의 치료를 제공했다. 떠돌아다니는 돌팔이에 대한 전통 역시 중세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동내 개들은 돌팔이들은 무대에 등장하기 전에 광란으로 대중들을 몰아가는 연극 공연이나 음악 공연을 하는 동안 무속 치료사들의 도착을 알렸다. 돌팔이들은 식민지 주민들이 매일 같은 두통과 통증을 낫게 해줄 알약과 엘릭서, 오일, 토닉들을 주문하기 시작하면서 18세기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국 개척자들은 의학 학위를 지닌 숙련된 의사들이 적고, 아주 드물게 의료 쇼와 환상적인 진통제를 팔러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마을을 방문하는 돌팔이들을 위해 숙소를 마련해 놓는 등 그들을 위한 특별히 기름진 땅을 제공했다. 돌팔이들은 오락과 손쉬운 치료를 제공해 시골 사람들을 불가항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누가 돌팔인지에 대해선 관점의 문제였다. 누구도 자신을 그렇게 규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확립한 것에 대해 부적절하고, 비과학적이거나 부정직하게 보이는 방법들을 사용하는 다른 이들을 흔히 돌팔이라고 불렀다. 반면 대다수의 의사는 과학에 대한 헌신을 선언함으로써 자신과 돌팔이들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으려 했지만, 돌팔이와 합법적인 의학 사이의 경계선은 매우 흐릿했다. 바이러스, 세균 및 인간 생리학을 실제 이해하는 데 필요했던 대부분 도구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아편, 수은, 안티몬, 퀴닌 및 각종 완화제는 돌팔이와 의사 모두에서 추천하는 치료제의 공통 재료였다. 그래서 또 다른 주장으로 돌팔이와 구별되기 위한 의사들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돌팔이와 의사들 간의 싸움은 자연과학과는 상관없이 평판과 돈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 학교 의사들의 싸움에 더 가까웠다. 19세기 후반 이후로 누군가를 돌팔이라고 부르는 것은 서로를 공격하는 의사들로 인해 너무 남용되었다. 그로 인해, 그릇된 판단으로 자신의 새로운 치료가 인간 고통을 완화한다는 사실 믿었던 의사에게 경고하는 것과 악의적인 사기꾼을 명확히 구분하는 데 실패했고, 그 단어가 주는 날카로움의 일부를 상실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아마도 가장 악명높은 거물 의료 사기꾼은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라인하르트 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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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콘신은 라인하르트 형제의 먹이가 된 최초의 주는 아니었다. 1901년 즈음 밀워키로 이동하기 전에 라인하르트 형제는 하이델베르크 연구원으로 알려진 미네소타주의 자신들 집에서 사기적인 의학연구소를 운영했다. 또한, 그들은 다른 시기에도 시카고, 오마하, 인디애나폴리스, 성 조지프, 미주리, 대븐포트, 아이오와에서 비슷한 사업을 했었다. 치료뿐만 아니라 그들의 연구소는, 특히 미니애폴리스의 연구소에 있던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남북전쟁 당시 활약한 미군. 역자 주)의 밀랍인형을 포함해 전시장을 가득 채운 환상적인 밀랍 인형으로도 유명했다. 미니애폴리스 전시장의 커스터 밀랍인형은 그의 마지막 숨결을 내쉬는 것처럼 위아래로 기계가 가슴을 펌프질하며 누워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미네소타에서 그들 사업에 대한 대배심 조사로 형제는 밀워키에서 가게를 차리기 전에 유럽으로 도망쳐야만 했다고 한다.

쌍둥이 형제 월러스와 윌리스, 세 번째 동생 F.A.H로 짜여인 라인하르트 형제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밀워키 4번가와 거리 모퉁이에 세워진 알람브라 빌딩에서 1902년 위스콘신 의학 연구소를 설립했다. 2년 후인 1904년 그들은 ‘완벽한 전문가(Master Specialist)’라는 두 번째 회사를 차렸다.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다른 돌팔이들과는 달리, 라인하르트 형제는 대부분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몸을 숨겼다. 대신에 이름없는 의학 전문가로서의 권위와 연구소에서 헌신적이며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들을 과시하는 걸 선호했다. 신문에 폭넓게 광고했던, 이 돌팔이들이 사용한 초기 자동차 중의 한 대에는 성적 문제에 관한 정중하면서도 완곡한 언어로 자신들을 “사적이고 남자에게 특히 비밀스러운 질병” 전문가로 공표했다.

성적 질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라인하르트 형제와 같은 돌팔이들에게 특히 적합한 발판이 되었다. 일부 성적인 장애는 실제 존재했지만, 라인하르트 형제와 같은 사람들이 제공하던 치료 대부분은 쾌락과 몸에 관한 빅토리아 시대 특유의 불안감을 상징하고 있었다. 섹슈얼리티(sexuality)는 19세기 남녀들에 관한 불행과 위험의 근원이자 자애로운 힘 모두로 간주하였다. 많은 이들이 도덕의 추락과 고통으로 이끄는 육체적 쾌락의 갈망은 쉽게 채워질 수 없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쉽게 속아 넘어가는 대중과 순진한 소비와 함께 돌팔이들 및 그와 비슷한 부류의 도덕 개혁가들에 의해 태연히 강조되었다. 성생활은 자애로운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직접적이며 통제적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라인하르트 형제는 이러한 무대를 행진하며, 환자들에게 성적 과잉과 몰락의 길을 위태롭게 내려간다고 진단하면서 치료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청구서를 보냈다. (다음에 계속.....)


-원문 출처-

JANIK, ERIKA, and MATTHEW B. JENSEN. "GIVING THEM WHAT THEY WANT: THE REINHARDTS AND QUACK MEDICINE IN WISCONSIN." The Wisconsin Magazine of History 94.4 (2011): 28-41.



*섹슈얼리티(sexuality): 섹스(sex)가 보통 생물학적 성(性)의 구별이나 직접적인 성행위를 뜻하지만, 섹슈얼리티(sexuality)는 19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용어로 ‘성적인 것 전체’를 가리킨다. 즉, 성적 욕망이나 심리, 이데올로기, 제도나 관습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인 요소들까지 포함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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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레이오트 2016/09/19 19:28 # 답글

    예나 지금이나 원인이 무엇이든 고자가 된다는 것은 극악의 공포죠 =_=;;;;;;
  • self_fish 2016/09/21 14:08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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