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 형제와 위스콘신의 돌팔이들 (2/3) 과학열람실

“건강을 위해선 간을 다스려야 한다”하다고 말하는 닥터 샌포드의 간 강장제 광고

(1편에 이어서)

대부분 작은 위스콘신 마을 출신들인 잠재적인 환자들은 라인하르트 형제의 광고를 보고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다. “위스콘신 의학 연구소 앞. 상담받고 싶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묘사해볼게요. 관자놀이와 머리 뒷부분에 통증이 있어요. 심장에 문제가 있고, 복부 아래쪽과 등허리 통증, 그리고 장 깊은 곳이 가렵기도 합니다. 전 73살이며 과민한 성격입니다. 식욕은 좋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죠? 비용은 얼마가 될까요? 나을 수 있을나요?” 답장에서 라인하르트 형제는 검사를 위해 위스콘신 의학 연구소로 방문할 것을 설득한다.

일단 그곳에 들어서면, 환자들은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건네고, 언제든 시간이 넉넉한 “바쁜” 의사를 기다리기 위해 의자로 안내된다. 라인하르트 형제는 바쁘지 않지만, 기다리는 환자들의 재정 능력을 살펴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환자는 의사를 대면한다. 보통 의사역은 윌리스가 맡았다. 그는 환자의 상태를 물어보기보단 먼저 그의 거주지, 직업, 수입, 재정상태를 물었다. 그런 다음 진료를 시작했다.

윌리스는 환자가 어떤 불편함을 가지고 있던지 상관없이, 성적 질환으로 진단했다. 가끔 그는 두 번째 의견을 위해 의학연구소에 고용된 또 다른 “의사”를 호출하곤 했다. 그 역시 항상 같은 결론을 들고 왔다. 다수의 돌팔이와 마찬가지로 라인하르트 형제도 대부분 일반적인 질환을 매우 심각한 공포의 질병으로 진단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성적 질환, 이 하나로 수많은 증상을 설명했다. 치료 비용은 환자가 부담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50달러에서 500달러까지 다양했고, 보통 그럴듯한 약과 전기 벨트와 전기 조끼로 구성되었다.

모든 사람을 치료하거나, 혹은 치료받으러 올 수 있는 건 아니므로 라인하르트 형제는 편지를 이용한 진단과 치료 사업을 확대하여 이익을 극대화했다. 공공의 목소리로써 의학적 지식과 치료를 제공하는 이름없는 가공의 의사인 이 ‘완벽한 전문가(Master Specialist)’는 “환상적인 주치의”였다.

라인하르트 형제는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학 설명서인 <Home Private Medical Advisor>의 복사본을 보내주었다. 이 매뉴얼은 “젊고 결혼을 했거나 혹은 안 한 사람들을 위해 이해하기 쉽게” 쓰였으며, 교육적인 글과 광고 글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설명서에는 아마도 ‘완벽한 전문가’가 쓴 듯한 사랑과 교제, 결혼에 관한 가르침뿐만 아니라 자위의 위해성, 성적 쇠약에 관한 단원들이 포함되어 있다. 독자들은 성적인 실수에 기인한 엄청난 고통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선 사랑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모든 것을 상담해주는 ‘완벽한 전문가’에게 편지를 쓰라고 재촉하는 느낌을 받는다.

설명서에 들어있는 진단서에는 여성 주위를 맴도는 남성의 숫기없음과  “남성스러움의 정도”에 관한 주관적인 질문뿐만 아니라 두통과 현기증 같은 일반적이고, 비특이적인 증상에 관해서도 묻는다. 진단서는 또한 전기 벨트를 입어본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묻는다. 전기벨트는 라인하르트 형제의 ‘무기고’에서 치료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를 가지고 ‘완벽한 전문가’는 무료로 진단을 해주지만, 무료가 아닌 치료 과정을 제안한다. 물론 치료 효과는 보장한다.

문제는 라인하르트 형제가 실제 의사가 아니었고, 최소한 의사의 개업허가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떤 의학 수련을 받았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월러스는 1900년 7월 19일에 취소될 때까지 미네소타에서의 허가증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사기행각을 위한 것으로, 표면적으로는 일부 의학적 기술과 수련의 증거로 볼 수 있는 것을 잠시나마 가지고 있었음을 뜻한다.

실제 현장에서 문제의 허가증을 담당하는 군청 직원은 대부분 사기와 합법적 학위를 구분하지 않았다. 심지어 학위는 다른 언어로 단순히 ‘국제 수여자(the world of the presenter)’가 수여했다고 적혀있었다. 월러스 라인하르트는 독일 출신으로 되어있고, 독일어로 쓰여있는 학위로 의료허가증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엄청난 의학 “학위 공장” 중 하나에서 학위를 받았을 수도 있다. 여기서는 어떤 실제적인 의학 수련 없이 비용을 지급하면 학위를 발행한다. 예를 들어 밀워키에 위치한 위스콘신 종합 의과대학(Wisconsin Eclectic Medical College)에서는 “의학 수련의 열정”을 가진 누구에게나 35달러에 학위를 팔았다. 그 대학 소유자 프레드 루트랜드(Fred Rutland)는 허가증을 취득하는 시험이 없는 위스콘신과 같은 주에서 유일한 실습은 “졸업하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내과의와 외과의 밀워키 대학(Milwaukee College of Physicians and Surgeons)에서는 지원자들이 10시간 이내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아침 7시에 걸어 들어가 “학생”이 되어 강의를 듣고, 공부하고, 시험을 치고, 노을이 질 무렵 한 손에 학위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셋째 형제인 F. A. H. 라인하르트는 의학적 배경이 전무했다. 수련한 대장장이였던 그는 자신을 전자기기 전문가라고 주장했다. 위스콘신 의학 연구소의 나머지 인력과 ‘완벽한 전문가’ 직원들은 의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의사나 일련의 의학 실습을 원하는 견습생, 혹은 의학 수련에 실패하고 어떤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이 진공캡 광고에는 장황한 지시문과 함께, 잘 사용한다면 “태양이 뜨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머리카락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적혀있다. 

라인하르트 형제에겐 운 좋게도, 미국은 아직 직업으로써의 의학 조직과 규제가 걸음마 단계였다. 20세기까지 의학 학위는 의료 행위를 하는 데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의사들은 보통 도제 생활을 통해 배우거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의학 서적 몇 줄 만 읽었을 뿐이었다. 의사회의 규제는 느슨하게 집행되었다. 그 일부는 의사들이 그들 스스로 기준을 높이는 데 필요한 이해의 성장과 모든 이의 기회를 수용하는 자유 시장 문화 사이에 내재하는 긴장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와 시장의 개방성은 20세기 변화 이전까지 국가적인 규제 노력을 지체, 전복시켰다.

의학 교육과 허가제의 표준을 향상하기 위해 1847년에 뉴욕의 의사인 나단 스미스 데이비스(Nathan Smith Davis)에 의해 설립된 미의학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 AMA)는 나아가 돌팔이들을 걸러낼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미의학회는 돌팔이들이 저지르는 사례들을 조사하고, 이를 공공에 알리기 위한 위원회를 서둘러 만들었다. 그러나 캠페인은 결코 완전한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돌팔이들이 제시하는 저렴한 비용과 정규 의사들의 값비싼 치료는 낭비라고 주장하는 것에 빈번히 흔들렸기 때문이다. 미의학회 역시 비록 수료를 제한하긴 했지만, 지갑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돈의 힘으로 의학 학위를 받을 수 있었기에 학위 공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의학회가 만들어지기 5년 전, 위스콘신에는 적절한 의학 표준을 도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 자체적으로 이미 의학회가 설립되어 있었다. 지역 입법부는 “의학적 권리를 요구하는 자들”로부터 공공을 보호하고 의학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1841년에 위스콘신 지역 의사회의 설립을 허가했다. 국가 기관으로의 지위를 가진 그 기관은 현재 위스콘신 의학회(Wisconsin Medical Society)의 전신인 위스콘신주 의학회(Wisconsin State Medical Society)가 되었다. 협회는 각 카운티(county)의 의사들을 의료시술 인구조사에 임명하면서 1850년에 돌팔이들에 대한 최초의 캠페인을 벌였다. 불행히도 인구조사에 임명된 의사들은 협회의 생각보다 더 큰 어려움에 부닥쳤음이 드러났다. 다수의 돌팔이는 용케도 인구조사자에 자신들이 채택되도록 했고, 합법적인 의사로 자신과 친구들을 보고했다.

1878년 초반에 위스콘신은 돌팔이 의사와 명망 있는 의사를 구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였다. 위스콘신은 의학회의 회원이나 의학 학위를 소지한 1436명의 의사들을 구별하여 의료 전문가로서 합법적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하였다. 불행히도 그러한 지위는 단순히 규정으로 정의되었을 뿐, 처벌 사항은 아니었다. 많은 입법자는 의학전문가임을 증명하여 법정에서 의학 비용을 청구하는데 돌팔이들을 걸러내는 정도로만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곧 1881년, 위스콘신주 입법부는 의료 면허 없이 의사나 외과의로 속일 수 없게 “전문가로 추정되는 박사(M.D)나 의사(Dr.)와 같은 칭호로 사람들을 기만하는 돌팔이를 방지하기 위한” 법령을 통과시켰다. 일부 돌팔이들은 ‘칭호’가 아닌 전문가로 추정되는 ‘이름’이나 혹은 라인하르트 형제의 경우 법을 피해 가면서 의학 전문성을 주장할 수 있는 ‘완벽한 전문가’와 같은 이름으로 영업을 하면서 법령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엄격하고 처벌할 수 있는 의료 허가법의 부재는 1870년대 다른 곳에서도 흔했지만, 위스콘신은 곧 다른 어느 곳보다 무자격 의료시술 의사를 위한 쓰레기처리장이 되었다.

(3편에 계속)

-출처-

JANIK, ERIKA, and MATTHEW B. JENSEN. "GIVING THEM WHAT THEY WANT: THE REINHARDTS AND QUACK MEDICINE IN WISCONSIN." The Wisconsin Magazine of History 94.4 (2011): 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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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레이오트 2016/09/21 15:08 # 답글

    예나 지금이나 남자에게 간과 모발은 소중한 것이지요 ^^;;;;;;
  • zariski 2016/09/27 16:10 # 답글

    번역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문단에 '1436년'이라는 연도가 이상해서 원문을 찾아봤는데, 원문에도
    State statute section 1436 identified doctors as those with a medical diploma or membership in a medical society, which allowed them to have legal standing as medical professionals.
    라고 되어 있네요. 음... 오타인 걸까요? 아니면 1436명의 identified doctors를 가리키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 self_fish 2016/09/27 17:08 #

    아이고~ '1436'이라고 나오니까 생각없이 연도라고 옮겼군요. 제가 틀렸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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