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과 형식의 균형추: '더러운 잠' 논란에 대하여 by self_fish

유명한 외국 디자이너의 전시회였다. 아니 유명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세계적인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디자이너로써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 낸, 타이포그래피 족보에 자신의 붓질을 남긴 사람이었다. 속된 말로 당시 간지나는 타이포그래픽 작업 중에는 그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지 않은 작품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하늘땅 같은 사람이 한국에서 전시를 했다. 당연히 이 전시는 디자인을 한다는 사람이면 반드시 찾아야할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성지를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심지어 실망스럽다는 불경한 소리를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

확실히 그의 작품들은 우리가 디자인 도록이나 여타의 것에서 보아온 것들과는 분위기와 스타일이 확연히 달랐다. 세련된 은유나 비유는 어디다 잡쉈는데 직설적이고, 1차원적었다. 그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것은 고루한 타이포그래피 계의 법칙과 질서를 뒤흔들어놨던 해체주의 스타일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그의 작품들은 글쎄올씨다였다. 바다를 건너오다 해체주의를 태평양에 빠뜨렸나 왜이렇게 얌전해졌지 싶었다.

디자인에서 내용과 형식의 균형은 중요하다. 내용에 치우치면 단순하고 유치해지고, 형식에 치우치면 난해해진다. 물론 내용과 형식 모두 좋으면 최고겠지만, 그런 작품은 전생에 우주를 구했을 때나 찬스 카드로 두어번 쓸 수 있다. 내용과 형식의 균형은 늘 디자인 계의 난제이자 디자이너들이 서로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우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그 유명 디자이너의 전시는 사회비판적인 주제를 담고 있었다. 북한, 핵, 인권, 국가 폭력 이런 것들 말이다. 그는 전달하고자 하는 분명한 내용이 있었고, 이러한 주제들은 당연히 오독의 가능성을 줄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따라서 내용과 형식의 균형추는 내용으로 더 기울어질 수 밖에 없다. 생각해보라. ‘아무개 만화가의 만화는 재미없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타입을 읽기 어렵게 흩뿌리고, 꽃을 주렁주렁 달아놓으면 이게 만화가를 비판하는 것인지, 어디 꽃집 청년 씨앗뿌리기 행사를 하는 포스턴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당시 전시회의 비극은 관람온 디자이너들은 그의 ‘형식’을 보길 원했고, 디자이너는 ‘내용’에 더 힘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다. 

요즘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의 논란도 마찬가지다. 일부 사람들은 추하고 아름답지 않다고 하고, 여성혐오라고 하고, 함께 정치를 이끌어야 할 여당을 모독한 행위라고도 한다. 

국가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그 예술가들을 철저히 배재했다. 생존의 문턱에서 오락가락했던 그에게 국회라는 적의 앞마당에서의 전시는 절호의 기회다. 당연히 그의 작품엔 분노가 실릴 수 밖에 없고, 그럴만한 마땅한 이유가 있다. 막연한 혐오와 비아냥이 아니였다. 작가는 세월호 침몰 동안 7시간의 행적을 침묵하고 있는 박근혜를 비판하기 위해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패러디 한, 형식에 대한 분명한 근거를 읽을 수 있다. 그러고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까봐 참 친절히도 그녀가 저지른 죄들을 사진으로 오려붙여놨다. 이렇게 친절한(?) 작품을 의도로 모르겠다거나, 심지어 여성혐오로 받아들이면 뭘 어떻게 하라는건지 모르겠다.    

지금의 논쟁들은 예전에 시위하는 사람을 바라보던 기성세대들의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시끄럽고, 폭력적이고, 불편하다는, 그들을 절박하게 만든 이유는 뒷전이고 예의와 규칙과 공손함을 강요하던 그 시선들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추한 그림’이 아니라 예술가가 ‘추한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도록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 주도로 블랙 리스트를 작성해 그들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엔 ‘더러운 잠’ 마저도 얌전했다. 그들이 당한 것, 국가가 했던 짓을 생각한다면 더 요란하고, 더 불편하고, 더 분노가 실렸어야 한다. 똥을 발라서 전시를 했어도 국회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리고 정신이 제대로 박힌 국회의원들이라면 그걸 보고 핏대를 세울게 아니라 반성했어야 한다. ‘더러운 잠’ 논란에서 잘못이라면 표창원 의원이 예술가의 ‘반골기질’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뿐이다. 

예술가들은 반골이고, 반골이어야 한다. 

예술가들은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공무원이 아니다. 

변화는 반골들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이 나라엔 ‘공무원’들이 너무 많다.  



덧글

  • -_- 2017/01/27 13:59 # 삭제 답글

    한마디로 예술이 아니라 프로파갠더와 증오가 합쳐진 배설물
  • 자유인 2017/03/15 10:33 # 삭제

    공감합니다. 처음에 이 사건 터졌을 때 '우리 편이니까 무조건 맞다'는 식으로 옹호한 일부 진보 세력(?)의 편향성 때문에 좀 뜨악하고 정 떨어지더군요. 차라리 예술이 아닌 "배설"임을 솔직히 인정이라도 했으면 '시원'하기는 했을 텐데...--^
  • 레이오트 2017/01/27 14:02 # 답글

    애시당초 예술 콘텐츠에 대한 작품외적 평론은 아무거나 가져다 붙이면 그만이거늘 =ㅅ=;;;;;;
  • 문재인 아웃 2017/01/27 14:11 # 삭제

    저 모욕주기의 대상이 바뀌면 평론이 달라진다죠
  • 피그말리온 2017/01/27 14:28 # 답글

    '반대의 상황을 용인할 수 있다면' 이라는 전제조건이 붙겠죠.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걸로 분노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의 것으로도 분노할 수 있는게 세상사이니...
  • 혜성같은 얼음의신 2017/01/27 14:31 # 답글

    균형추는 어디에...
  • 궤변입니다 2017/01/27 14:57 # 삭제 답글

    변화는 모두에게서 나옵니다. 반골만이 변화를 주도한다는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 ㅇㅇ 2017/01/27 15:24 # 삭제 답글

    그분들 수준이 그정도니 좋다고 거기 전시했겠죠.
    어쩌겠어요,
    예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한결같은데.
  • 김대중협정 개정안 2017/01/27 16:31 # 답글

    이런 풍자는 운치가 있는데 저 그림은 좀 그렇네요.

    1998.05.27 김홍신
    "살아 생전에 거짓말 많이 하고 나쁜 짓 많이 하면 죽어서 염라대왕이 잘못한 것만큼 바늘로 한뜸 한뜸 뜬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 임창렬 후보는 아마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면 거짓말도 많이 하고 너무 많은 사람을 속였기 때문에, 바늘로 뜰 시간이 없어 공업용 미싱으로 드륵드륵 박아야 할 것이다."
  • 지나가는사람 2017/01/27 16:56 # 삭제 답글

    위의 '더러운잠' 작품은 의도는 명확하지만 표현방식에서 저급하며 또 시기에서는 비굴합니다.

    사실을 그대로 적시하는 것은 보도로도 충분합니다. 그 사실들의 이미지 그대로 나열하는 행위에 패러디라는 형식을
    적용한다면 오류입니다. 차라리 광화문 광장에 있던 학생들의 패러디가 훨씬 더 좋아보입니다.
    차라리 100호 캔바스 하얀바탕에 똥으로 박근혜 이름석자를 쓴게 강렬할겁니다.

    대항할 대상이 정점에 올라있을때 외치는 것과 곤두박질쳐 저물고 있을때 기회봐서 소리치는게 같겠습니까.

    아무리 패러디니 키치니 운운한다해도 예술작품이라고 정의할때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박근혜 최순실등의 이 미친짓거리들을 예술계에서는 이정도 밖에는 표현을 못하는지 답답합니다.
  • 뇌빠는사람 2017/01/27 20:06 # 답글

    이 작품이 저질인 게 지가 그린 것도 아니고 인쇄해다가 걸은 거더군요. 합필갤 전시회도 아니고
  • Heron 2017/01/28 23:11 # 답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자기도 같은 짓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옹호하는 사람들이 언행일치를 하는 것인지...
  • 2017/01/29 08: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1/30 14:1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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