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매혹한 슬럼가 by self_fish

19세기 후반, 영국 중산층은 자신들의 도시와 마을에 있는 이질적인 존재에 매료되었다. 
슬럼가(Slums),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성폭력과 범죄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는 
신문을 읽는 이들에게 호기심과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1895년 11월 2일, 젊은 웨일스 여성인 로시나 메거(Rosina Meagher)는 남편의 폭행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로시나는 뉴포트의 “여자가 조용한 거리(Quiet Woman’s Row)”라고 알려진 악명높은 지역에 살고 있었다. 이 약칭은 지역 언론에서 소위 여성을 겨냥한 가정 폭력을 비꼬며 붙인 이름으로 슬럼가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이 거리에 대한 지역 언론의 보도, 특히 그곳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한 불필요한 관심은 ‘슬럼가 이야기(slumland storytelling)’에 매료되었던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영국 전역의 도시와 마을을 엉망으로 만드는 슬럼가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는 도시 재개발 논쟁과 신문 판매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제이콥 리스, 조지 심스, 마가렛 하크네스, 아서 모리슨, 잭 런던과 같은 여러 저명한 작가들은 이 기간에 도시 슬럼가에 관해 글을 썼다. 1852년에 처음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단어인 슬럼(Slum)은 19세기 전반에 엄청난 인구 증가로 인한 영향 중 하나였다. 농업에서 산업 노동으로의 전환은 사람들을 값싼 주택이 있는 도시로 이동시켰다. 그 값싼 집들은 도시로 올라온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성급히 설계되었고, 단기 임대한 토지 위에 세워졌다.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수가 점점 증가하면서 집 안으로 자신들을 쑤셔 넣었고, 비위생적인 환경이 뒤따랐다.
비슷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 거리, Gustave Doré, 1872.

슬럼가의 삶을 묘사할 때마다 사실과 허구는 빈번하게 뒤섞였다. 소름 끼치는 이야기는 안전한 곳에서 이야기를 즐기는 독자들에게 유흥 거리가 되었다. 슬럼가가 어떠한지를 보러 가려는 상류층들로 “슬럼 관광(Slum tourism)”이 발전했다. 1890년대 언론에서는 무명의 부유층 소녀가 실종된 사건을 보도했다. 형사들은 결국 이스트 런던의 한 슬럼가 주택에서 그녀의 행방을 발견했다. 그녀는 월터 베전트(Walter Besant)의 소설 [각양각색의 사람들(All Sorts and Conditions of Men, 1882)]에 너무 ‘심취’해 있었고, 실제로 가난한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기 위해 슬럼가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녀는 슬럼가의 한 거주자에게 부유한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 말했다가 납치되었다. 그자는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몸값을 받아낼 심산이었다.

이 불행한 소녀에 대한 기사는 ‘슬럼가 이야기’의 전형을 거의 완벽히 반영한다. ‘슬럼가 이야기(slumland storytelling)’는 역사학자 알랜 메이네(Alan Mayne)가 만들어낸 용어로써, 이 기간에 신문사들이 중산층과 학식 있는 독자에게 호소하기 위한 계산된 형식으로 슬럼가에서 벌어진 범죄 사건을 보도했던 방식을 말한다. 언론은 성에 대한 명확한 고정관념에 기대어 슬럼가 주민들 특유의 범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슬럼가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남자들은 폭력적이었다. 여자들은 여성스럽지 않거나 자식들에 대한 모성이 결핍된 모습, 혹은 결혼해서 가정 폭력의 희생자로 전락한 순진한 존재, 혹은 비참한 빈곤 속에서도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아이들은 부모의 보살핌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망나니, 또는 여성처럼 슬럼가를 벗어난다면 잘 성장할 수 있는 순진한 존재로 묘사했다. 이런 부류의 이야기 중심에 놓인 여성은 상스러운 범죄의 피해자나 순종적인 성차별 피해자라는 두 가지 유형 중 하나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여성은 아이들과 비슷한 존재로 그려졌기 때문에 여성의 악한 모습이나 범죄행위는 독자들에게 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한 슬럼가의 방, 1891. Chronicle / Alamy Stock Photo

슬럼가에 대한 이야기들은 물론 외부인에 의해 쓰였고, 선입견에 의해 형상화되었다. 1894년 리버풀 머큐리 신문은 도시 슬럼가에 대한 지역 치안판사의 경험을 상세하면서도 정통한 목소리로 보도했다. 기사에선 존경할 만한 지위의 사람이 주민들의 삶을 살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슬럼가로 들어갔고, 그의 성취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려 한다고 했다. 기사는 슬럼가 삶의 주요 특징을 ‘불결함, 술 취함, 경솔함, 무법적인, 부도덕, 범죄’라고 보도했다. 그러한 이야기는 독자들이 마치 도시의 일부가 무법천지인 것처럼 느끼게 했다.

1899년 벨파스트에 있는 노던 휘그(Northern Whig) 신문사는 슬럼가 철거를 요구하는 특집 기사를 냈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 노던 휘그는 슬럼가를 죄악과 폭력, 범죄가 판을 치는 ‘음란하고, 추잡스러우며 타락한 위험하고 악취 나는 곳’으로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던 휘그는 묽은 홍차와 빵으로 살아가는 빈곤한 여성 거주자들, 아기에게 우유도 젖도 물리지 못하는 죽어가는 엄마들, 아이들은 굶주린 ‘해충’으로 묘사했다. ‘침울하고 술에 취한 잔혹한 짐승’ 같은 남편이 그녀의 옷을 찢는 동안 몸을 웅크리고 있는 가정 폭력의 희생자인 한 아내의 상세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 전엔 싸구려 여인숙에서 공동생활로 인해 성별의 구분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술에 찌들고, 학대와 살인, 수간’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열성적으로 언급했다. 이런 유의 불필요한 글은 신문 기사에 국한되지 않았다. 유명한 ‘페니 드레스풀(penny dreadfuls)’ 뿐만 아니라 조지 기싱(George Gissing)의 [지옥(The Nether World)]과 아서 모리슨(Arthur Morrison)의 [자고 거리의 아이(A Child of the Jago)]와 같이 잘 알려진 작품들을 포함한 ‘슬럼 소설(slum fiction)’이라는 장르가 유명해졌다. 구타당한 아내의 붉게 부어오른 얼굴, 고통에 찬 눈빛, 찢어진 드레스와 같은 기사의 상세한 묘사는 특히 슬럼 소설과 비슷했다. 수간과 매춘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러한 폭력의 묘사는 성적인 의도를 담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런 묘사는 슬럼가의 잔인함을 분명 강조하지만, 또한 독자들을 자극할 목적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개인적인 사고와 범죄는 슬럼가의 증상으로 보였다. 언론은 어떤 사건이라도 관련 당사자가 슬럼가 지역에 살면 지방 법원으로 오기도 전에 물고 늘어졌다. 그들의 주거 사실은 즉시 뉴스거리가 되었다. 로시나 메거와 ‘여자가 조용한 거리’의 사례가 그러했다. 사우스 웨일스 뉴포트의 필그웬리(Pillgwenlly) 지역의 유명한 부둣가는 로시나 사건을 보도하기 몇 년 전부터 뉴스 기사에 등장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는 곳이었다. 사건 대부분이 사소한 범죄였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주로 그곳 여성의 범죄와 정신적 질환 경향에 초점을 두었다. 사건은 공동 빨랫줄 사용을 둘러싼 싸움, 뒤뜰에서 동물을 키우는 것에 대한 분쟁, 인근 부두에서의 석탄 도난과 같은 것들이었다. 말싸움과 사소한 폭행은 여성들 사이에서 자주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부두에서 일하는 남편보다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가사 공간이 좁아지면서 이해심을 잃었지만, 이를 자극하고 유발한 원인은 언론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1847년 뉴포트의 도시계획. 필그웬리 구역은 왼쪽 하단이다. 

토마스 메거가 아내에 대한 살인 미수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이 사건은 웨일스 전역에 알려졌다. 이를 통해 ‘집 안에 가구 하나 없는’ 빈곤에 시달린 로시나의 삶이 드러났다. 슬럼가의 여성은 보통 ‘어수선’하고 무능한 살림꾼, 혹은 슬럼가의 삶으로 인해 타락한 순진한 존재였다. 로시나는 후자가 되었다. 이는 부르주아들의 이상적인 여성상이었다. 즉, 알코올 중독에 폭력적인 남편을 가진 귀엽고 금발의 소녀로 슬럼가의 삶에도 불구하고 집 안팎을 깔끔하게 유지하면서, ‘다른 빈민보다 더 깨끗한 면을 지닌’ 사람으로 그려졌다.

로시나 메거는 슬럼가의 매혹적인 스타가 되었다. 이브닝 익스프레스 신문사는 그녀가 등장한 죄악의 소굴을 조사하기 위해 기자를 파견했다:

“여자가 조용한 거리라는 말과는 정반대였다. 즉결심판소는 거의 열리지 않았고, 어떤 난동을 부리는 소리가 거리 쪽에서 들려왔다……토요일 아침에 그곳을 방문한 우리 기자들은 그곳을 가장 가난한 아일리쉬 사람들의 전형적인 거주지였다고 말하겠다. 양손으로 허리를 짚고 서 있는 더럽고 거친 한 무리의 여자들은 ‘로시나 사건’에 대해 떠들고 있었고, 반면 반쯤 옷을 걸친 12명의 아이는 길가에 앉아서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기사에 따르면, 가난에 찌든 그곳 주민들은 사건에 대해 서로 떠들었고, 그동안 아이들은 방치됐다. 그러나 사건에 대한 기사의 태도 속에는 호기심뿐만 아니라 두려움도 있었다. 언론 보도의 결과로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로시나가 거의 살해될 뻔했던 장소는 어떠한지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그 슬럼가로 모여들었다. 토머스 메거의 폭행만큼이나 끔찍한 사건이 신문의 페이지를 장식하자, 뉴포트 시민들은 지역 내의 슬럼가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를 바랐다. 마을 안의 이런 지역은 시민들과 ‘관계없는’ 곳이었다. 그것은 외계인, 타자, 이질적인 것, ‘정상적인’ 사회의 외부였다.

*

슬럼가 이야기는 주요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배경으로 나타났다. 신문에는 상당한 금액을 주고 주택을 사고파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와 함께 거주자의 빈번한 이동으로 인한 단기 임대와 건물주가 주택을 유지보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여자가 조용한 거리’의 집은 팔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거리에서 사소한 범죄의 빈번한 발생은 실업, 낮은 임금 또는 가난한 생활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 슬럼가에 대해 어떤 조처를 하기를 정기적으로 요구했다. 1850년, 마을의 위생시설에 관한 보고서는 그 거리를 14채의 집에 단 하나의 옥외 변소만 있고, 개방된 쓰레기 구덩이로 인해 항상 악취가 난다는 지적과 함께, 축축하고 지독한 곳이라며 음침한 단어를 사용해 이를 묘사했다.

다음 반세기에 걸쳐, 이런 값싼 주택의 소유주에게 건물의 유지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1888년 2개의 방이 딸린 주택의 소유주는 ‘더럽고 너무 많은 인원이 사는’ 그 건물을 계속 허용할지의 문제로 즉결 심판소에 소환되었다. 1875년 주민들이 의회에 제출한 탄원서에는 그 건물을 ‘거리 끝에 있는 그 벽장 같은 집은 이웃에게 골칫거리이자 수치스러운 곳’으로 묘사하며 주의를 촉구했다. 다음 해에, 한 판사는 ‘여자가 조용한 거리’에 대한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추가로 암시하며 68명의 거주자가 두 개의 변소를 공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건물주에게 변소 4개를 더 지으라고 통지했지만, 그가 이행했는지에 대한 증거는 없다. 1887년, 언론은 조선소를 위한 새로운 철도와 역을 만들기 위해 그 슬럼가를 철거할 거라는 추측성 기사를 냈다. 기사는 뉴포트 지역 전체에 가져올 이익에 열광했던 반면, 그곳에 사는 빈민들이 받을 충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 거리 거주자들은 최악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가장 기본적인 편의 시설을 얻기 위해 몇 년에 걸쳐 투쟁했고, 뉴포트의 나머지 지역에서는 그곳을 기본적으로 외부라고 간주했다.
뉴포트의 웨스트 게이트 광장, 1847.

그 거리를 범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곳 주민들이 범행을 저지르긴 하지만, 다른 많은 슬럼가도 마찬가지였다. 그곳 여성 중 일부는 범죄를 반복했지만, 남자도 범죄를 저질렀고, 폭행 및 살인 미수 등 더 심각한 범죄는 더 잦았다. 남녀 거주자 모두 경제적, 공간적 압력을 고려할 때 더 사소한 위반들은 이해될 수 있었다. 그들은 공유 공간에 대한 싸움, 성숙한 아이들을 포함한 여러 명의 다른 거주자와 좁고 비위생적인 집에 함께하는 데서 오는 짜증, 석탄을 훔치고 아이의 양육비를 낼 수 없어 지역 소년원으로 보내지는 등의 재정적 걱정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언론은 ‘여자가 조용한 거리’의 여성들에게 압도적으로 초점을 맞췄다. 한때 슬럼가의 현실을 다뤘던 미덕은 곧 사라졌다. ‘여자가 조용한 거리’는 범죄, 무질서, 더러움의 줄임말이 되었다. 곧이어, 슬럼가를 휩쓸려는 지역 언론의 의도 맨 앞에는 발전이라는 이름이 놓였다. 신문 인쇄물은 여론과 지방 정부 정책에 영향을 끼쳤다. 근본적인 원인보다는 범죄에 초점을 맞췄다. 자발적으로 방문한 두려움 없는 취재 기자들이 그 거리 사람들을 마치 오지의 원주민처럼 보도하면서 ‘여자가 조용한 거리’를 무법지대의 이미지로 만들었다. 언론 보도는 그곳을 뉴트포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표현했다. 그리고 뉴포트의 일부가 아니라면, 거기에 없어야 했다.

곧 그렇게 됐다. 1899년 거리는 철거되었고, 1910년에 마지막으로 언론에 언급되었다. 그곳은 과거로부터 전해질 가치가 있는 역사의 한 조각이 분명했다. 슬럼가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는 ‘호기심을 자아내는’ 옛 거리 이름에 관한 기사의 단순한 각주로 대체되었다. (번역 김명호)


필자 닐 다비(Nell Darby)는 범죄 역사학자이자 <빅토리아 시대의 삶(Life on the Victorian Stage). Pen & Sword, 2017>의 저자이다.

-원문-
http://www.historytoday.com/nell-darby/desolation-row-victorian-britain’s-sensational-sl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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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까마귀옹 2017/10/21 16:19 # 답글

    .......현대 한국의 '달동네', '영구임대 아파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리'의 그 따위 행동들이 많이 겹치는군요.
  • self_fish 2017/10/21 16:46 #

    우리나라에선 현재 진행형이지요...
  • 하니와 2017/10/21 22:12 # 삭제 답글

    왠지 요새 유행하는 실장석 소설들 하고 이미지가 겹치네요
  • 이글루스 알리미 2017/11/14 08:07 # 답글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의 소중한 포스팅이 11월 14일 줌(http://zum.com) 메인의 [허브줌 컬처] 영역에 게재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게재된 회원님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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