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과 자석: 사실(fact)의 등장 by self_fish

옛날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데카르트는 양가죽으로 만든 북이 늑대 가죽으로 만든 북소리를 들으면 침묵할 거라고 믿었다. 사자는 수탉을 두려워하고, 조개가 기러기를 낳는다는 이야기가 일반적으로 주장됐고, 케플러는 이걸 믿었다. 다이아몬드는 염소 피로 얼룩지기 전에는 파괴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마늘로 자석을 문지르면 자력의 작동이 멈출 것이란 주장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18세기 말경에 이르면서 이런 이상한 신념들은 모두 사라졌다(혹은 그렇게 보였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것은 제비가 연못 바닥에서 동면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위대한 박물학자 칼 린네우스는 비록 다른 새들의 이주(migrate)를 알고 있었지만, 이러한 믿음을 유지했다. 나는 "믿음(belief)"이란 단어를 사용했지만, 이러한 믿음은 오히려 믿을만한 지식으로 간주되었다. 사람들은 마늘이 자석의 힘을 없앤다고 알았다. 그들은 자신의 믿음이 많은 경험에 기반을 둔다고 주장했다.

당시 합리적으로 보였던 이러한 믿음은 이제 괴상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은 지식으로 간주하던, 믿음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마늘과 자석의 경우는 특히 좋은 예이다. 마늘이 자석의 힘을 진짜 없애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을 상세히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 모두 그 믿음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이론을 인쇄물로 체계적으로 공격한 최초의 사람은 1589년 잠바티스타 델라 포르타(Giambattista della Porta)였다. 이를 마지막까지 방어했던 사람은 1687년의 로버트 미즐리(Robert Midgeley)였다. 그 둘을 나누는 가까운 시기의 사건은 과학혁명이며, 이는 마늘과 자석이라는 사소한 예가 어떻게 근대 과학을 창안했는지에 관한 훨씬 더 큰 문제로 우리를 인도한다.

두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에겐 마늘은 많았지만, 자석은 거의 없었다. 자석은 항법용 나침반으로 출시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나침반은 중국에서 도입되어 13세기부터 이슬람과 지중해의 기독교 국가 모두에서 사용되었다. 그래서 수 세기 동안 나침반과 마늘이 자석의 힘을 제거할 거라는 잘못된 믿음은 동시에 일어났다) 두 번째, 더 중요한 것은 활판 인쇄의 도입(1450년)으로 현재의 인터넷 영향에 비견되는 길고 느린 정보 혁명을 초래했다.

마늘즙 안의 철

델라 포르타는 마늘즙으로 나침반을 문질러도 잘 작동한다는 걸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부들이 음식에 든 마늘을 먹고 나침반 위에 기꺼이 숨을 쉬었다고 말했다. 비록 델라 포르타는 경험에 호소했지만, 누구나 그를 믿은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상당한 회의감으로 그의 주장을 보고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의 실험을 주의 깊게 반복하고 개선하기까지 했다. <의사의 종교(Religio medici)>의 저자 토마스 브라운(Thomas Browne)은 철 막대를 가열한 다음 마늘즙으로 열기를 껐지만, 여전히 자기를 띠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자석을 들고 녹이 슬 때까지 마늘즙 위에 떠 있도록 두었고, 여전히 남북 방향을 가리켰다. 1654년 월터 찰턴(Walter Charleton)은 늑대 가죽 북이 양가죽 북을 침묵시킨다고 믿는 사람들을 조롱했다. 그 주장에 반대되는 가설을 입증하는 건 쉽고 값싼 실험이었다. (늑대는 17세기 중반까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희귀했지만, 아마도 늑대 가죽은 유럽에서 수입되었을 것이다) 몇 년 후 로버트 보일은 염소 피가 묻지 않은 다이아몬드는 부서지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을 조롱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다이아몬드를 연마하여 미세한 입자로 만들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갈아 부수는 다이아몬드 상인과 대화를 나눴다. 경험과 실험은 이런 고대 믿음을 해체했다. 그러나 어떻게 이런 믿음이 2,000년 동안 살아남았을까? 한 가지 답은 고대 믿음은 서로 연동되고 상호 지원한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자석의 힘을 제거하고 염소의 피는 그힘을 복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왜 이런 신념들이 갑자기 17세기 중반에 사라졌는지를 설명하기는 더 쉽다. 첫째, 고대 저자들은 더이상 예전과 같은 권위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author)’란 단어는 원래 권위를 의미했고, 누구도 죽을 때까지 저자가 될 수 없었다(셰익스피어의 경우에도 죽은 후에야 저자로 불렸다). 갑자기 관찰자의 경험이 플루타르코스(Plutarch)와 프톨레마이오스(Ptolemy)와 같은 저자의 보고를 능가하는 데 사용되었다. 보일은 너무 많은 저자가 정보가 정확한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보고한다고 지적했다. 보일은 그들이 그걸 얻기 위해 고통스러운 노력을 한 것도 아니고, 믿을만한 전문가로부터 얻은 것도 아니라고 했다. 델라 포르타는 실제로 보일이 이유 없이 신뢰하지 않은 저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비록 마늘즙을 바른 자석을 실제로 가졌던 것으로 보이며 자석을 이용한 또 다른 실험들을 보고했지만, 다른 이의 것을 도용한 것으로 실제로 실험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책 도입부에 자신이 반증했음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했던 마늘이 자석의 힘을 제거한다는 오래된 믿음을 포함하여 신비한 자연과정(natural processes)의 긴 목록을 실었다.

옛날 저자들이 권위를 잃은 것은 부분적으로 인쇄술이 많은 양의 새로운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보 대부분은 모순적이었기 때문에 독자는 정보를 선택해야 했다. 1543년 베살리우스는 자신의 책 파브리카(De Fabrica)를 출판했다. 여기서 그는 갈렌의 해부학적 설명에서 발견한 오류를 나열했다. 누가 옳은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오직 스스로 찾거나, 스스로 찾은 누군가가 쓴 믿을 만한 소스에 의지하는 것이다. 인쇄 혁명은 따라서 역설적인 효과가 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텍스트의 권위를 훼손하면서 또한 신뢰할 수 있는 목격자가 작성했다고 주장하는 특정 부류의 텍스트의 권위를 높였다.

인쇄술만 고대 텍스트의 권위를 훼손했던 것은 아니다. 또 하나, 경험이었다. 이 단어는 모든 주요한 출처를 관통했다. 15세기의 지배적인 가정은 만약 누군가 적합한 책(거미줄이 무성한 고대 수도원의 도서관에 숨겨져 있을 수 있는)을 찾을 수 있다면, 모든 지식은 책에서 발견된다는 것이었다. 이 견해는 훗날 아메리카 대륙의 이름을 붙였던 아메르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의 항해 때문에 파괴됐다. 콜럼버스는 늘 자기가 중국에 거의 도달했다고 믿었지만, 베스푸치는 새롭고 드넓은 대륙을 발견했다고 파악했다(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몰랐던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항해하면 중국에 도착할 것으로 믿었고, 그가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이 서인도 지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베스푸치는 콜럼버스가 새로운 대륙을 찾았다는 것을 깨달았다_옮긴이). 자신의 항해에 관해 설명하면서 베스푸치는 새로운 감각으로 옛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새로운 대륙을 ‘발견되었다(discovered)’고 했다. 이 단어는 베스푸치의 발견에 대한 뉴스만큼 빠르게 퍼졌으며, 오래된 지식은 신뢰할 수 없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수립했다. 그것은 진정한 진보가 될 수 있었다. 그 순간부터 고대 텍스트의 권위는 치명적으로 훼손되었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

인쇄술과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이것은 아주 명백한 사건이다. 하지만 뭔가 다른 것이 작동했다. 우리는 갈릴레오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1612년에 갈릴레오는 시체가 물에서 뜨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발표하면서 물보다 무겁지만 평평하기 때문에 얼음이 뜬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공격했다. 갈릴레오를 비판하는 이들은 시리아에 벽돌이 뜨는 호수가 있다는 세네카의 말로 응수했다. 갈릴레오는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세네카는 응당 신뢰할 수 있는 저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갈릴레오의 말에 경악했다. 몇 년 후 갈릴레오는 대포알이 공중에서 날아갈 때 더 뜨거워지는지 더 차가워지는지를 두고 토론에 참여했다. 상대방은 대포알이 더 뜨거워진다고 주장하며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달걀을 투석기로 공중으로 날려 달걀을 요리했다고 지적했다. 갈릴레오의 답변은 간단했다. 우리는 달걀과 투석기와 이를 행할 적합한 젊은이가 있다. 왜 우리는 똑같이 시도해보지 않는가? 갈릴레오의 가정은 달걀과 투석기와 젊은이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1652년 직후에 마늘과 자석에 관한 고대 텍스트를 옹호했던 알렉산더 로스(Alexander Ross)는 과거와 현재의 것과 같다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마늘과 자석에 관한 이야기에 그렇게 많은 유명한 저자들이 당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난 그들이 여러 다른 종류의 자철석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그렇다. 플리니우스와 다른 이들은 여러 종류의 자철석을 만들었고, 가장 좋은 것은 에티오피아산이다. 어떤 자철석은 끌림이 마늘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아마도 우리 지역의 마늘은 더 더운 나라의 고대인의 마늘만큼 강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역과 상관없이 모든 마늘과 자석의 성질이 같다는, 즉 본성(nature)이 어디에서든 같다고 믿는다면 플리니우스, 세네카를 비롯한 다른 모든 저자는 틀렸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17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옛 저자들은 더는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필요한 것은 다이아몬드 판매상과 선원과 같은 전문가와 목격자였다. 고대 저자에 대한 존경은 사라졌다. 출판은 배움의 세계를 진실에 대한 주장이 목격자의 호소에 판단되는 일종의 법정으로 바꿔놓았다. 하나의 단어가 이러한 세계를 완벽하게 상징한다. 바로 '사실(fact)'이다. 1660년 이전의 영국에서 '사실'은 행위(deeds)였고 흔히 범죄 행동을 뜻했다. 법정에서 배심원의 임무는 사실을 판결하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결정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우리는 아직 '사후 종범(accessory after the fact)'이라는 말을 할 때 이 오래된 의미에서의 '사실'을 사용한다). 갑자기, '사실'은 현재 비개인적인 진실(impersonal truths)이 되었으며, 동시에 반박할 수 없는 무엇으로 남았다. 즉, 당신은 잘못된 '믿음'은 가질 수 있지만, 잘못된 '사실'은 가질 수 없다. 1663년 영국 왕립학회는 누구나 참여하고 제안할 수 있는 '설명'(이는 곧 '이론'으로 불리게 됐다)과 달리 이 새로운 '사실'에 대한 개념을 확립했다. 법의 언어가 새로운 과학의 핵심 용어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

'사실'에 관한 이 새로운 세계에서 모든 종류의 오래된 신념은 단순한 우화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중 가장 첫 번째 대상은 마늘이 자석의 힘을 제거한다는 믿음이었다. 우리는 이 모든 성과를 위대한 마음-갈릴레오, 케플러, 뉴턴-의 업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수학자들의 연구와 함께 훨씬 더 넓은 문화적 변화, 전통적 권위에 대한 새로운 반항, 사실을 올바르게 알기 위한 몰두로서의 상징이 있었다. 여기에 참여한 이들 중에는 과학자들도 있지만, 또한 전혀 과학자로 여겨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이것은 새로운 문화였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모든 지식은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최근의 사고방식이 있다. 그러나 17세기에 유행했던 믿음은 새롭고, 회의적인 믿음이었다. 목격자의 기록과 쉽게 반복할 수 있는 실험에 대한 믿음이었다. 옛 문화와 비교할 때 그것은 체계화된 불신의 한 형태였다. 델라 포르타와 갈릴레오를 비판하면서 세네카, 플리니우스, 프톨레마이오스가 틀릴 수 없다고 주장했던 이들은 옛 문화를 존경하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런 문화는 지금의 우리로서는 거의 상상조차 할 수 없이 멀리 떨어져 있다. '사실'을 발명하기 전의 표준적인 관점이란 의심할 여지 없는 전제로부터 추론된 진리만 믿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신학, 철학 및 수학은 유일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을 제공했으며 이는 여론이나 명성의 한 형태였다. 이제 우리는 온갖 종류의 믿을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은 '사실'에 대한 집착이었다. (번역 김명호)

-번역 원문-
http://www.historytoday.com/david-wootton/garlic-and-magnets-scientific-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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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중생 : 62. 쥐가 사는 섬 2018-01-16 00:24: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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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그게 2018/01/15 17:39 # 삭제 답글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는 도시전설이 21세기도...
  • self_fish 2018/01/15 17:41 #

    원래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지요...쿨럭~
  • 나른한 치타 2018/01/16 08:14 #

    저도 이 글 보자마자 선풍기괴담이ㅋㅋㅋㅋ
  • 愛天 2018/01/16 11:47 # 답글

    SNS 가짜뉴스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하는 과거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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