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근세의 유럽인은 인어의 존재를 확신했을까 by self_fish


13세기 동물우화집에 묘사된 사이렌

코튼 매더(Cotton Mather)는 1716년 7월 5일 날짜가 적힌 편지를 런던 왕립 학회에 보냈다. 그러한 행동이 유별난 건 아니었다. 53세의 이 보스턴 박물학자는 과학적이며 철학적 발견을 자세히 기술한 편지를 종종 해외로 보냈다. 그러나 이번 편지의 주제는 좀 흥미로웠다. ‘트리톤(Trit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물고기인 모습을 한 바다의 신: 옮긴이)’이라는 간단해 보이는 제목의 편지에선 인어의 존재에 대한 코튼 매더의 진실한 믿음이라는 복잡한 입장을 드러냈다.

1660년에 창립된 영국왕립학회의 회원인 매더는 최근까지도 인어가 ‘켄타우로스나 스핑크스’보다 더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었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그는 ‘타나그라 지역에서…죽은 트리톤’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데모스트라투스(Demostratus)부터 인어와 트리톤의 존재를 주장한 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의 주장에 이르기까지 인어에 관한 많은 역사적인 이야기를 발견했다. ‘플리니우스는 우리 시대에선 더이상 위대한 명성을 가진 이가 아니기’ 때문에 매더는 이러한 고대 이야기들을 거짓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 보스턴 박물학자는 모날(모리셔스 지역의 수장), 피에르 블롱(Pierre Belon)과 피에르 질(Pierre Gilles)과 같이 존경받는 근대 초기 과학자들이 인어를 목격했다는 문서를 조사하면서, 아마도 이성적이고 현대적인 세계인 그 당시의 현재에서 이 현상을 추적했다.

매더는 인어에 관한 근세(early modern)의 이야기들에서 그 존재가 확인될 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입증되었음을 발견했다. 존 왕 치세 시기에 한 무리의 영국인들이 서퍽 오포드 해안에서 남성 인어를 잡았다, 1404년에 네덜란드 여성들이 해안에서 여성 인어를 끌고 하를렘으로 데려갔다, 영국 선장 리차드 휘트보네는 1610년에 뉴펀들랜드를 탐험하면서 여성 인어의 목격을 증언했다는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도 매더는 최소한 ‘밀포드에서 브레인포드(코네티컷 주)까지 배를 타고 온 세 명의 정직하고 믿을 만한 남성들이 트리톤과 맞닥뜨렸다고 주장’한 1716년 2월 22일 전까지는 인어의 존재에 대한 타당성을 전적으로 확신하지 못했다.

이들은 미친 듯이 집으로 달려 들어가 바위 위에 누워 있는 트리톤을 공격하기로 했지만, 남자 중 한 명이 실수로 그 생물에게 겁을 주었다. 그 괴물은 물속으로 뛰어들었는데, ‘그들은 인어의 전신을 보았는데 머리와 얼굴과 목과 어깨, 그리고 팔과 팔꿈치, 그리고 가슴과 뒷모습이 전적으로 인간의 형상이었으며…하체는 물고기로, 고등어와 같은 색이었다.’

완전히 확신하다

사람들로부터 이 소식을 직접 들은 후 그는 인어를 믿게 되었으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마침내 나의 믿음은 완전히 정복되었고, 나는 이제 어쩔 수 없이 트리톤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그 트리톤 중 하나는 지금 나의 조국에 전시되어 있고, 트리톤에 대한 증거는 그것에 의문을 제기한, 전적으로 내 잘못이 될 것이다.’ 즉, 매더는 인어의 존재를 완전히 확신했다. 그 이야기가 ‘싸구려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며 이 보스턴 사람은 영국왕립학회에 ‘자연의 모든 새로운 사건’을 계속해서 전달할 것임을 약속했다.

매더의 사례는 과학적인 수준이 높다고 여기는 지금 우리 시대의 관점에선 너무 쉽게 속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우리가 지구의 동식물 전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비록 우리는 바다의 약 5%만을 탐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잠깐 자신을 매더의 입장에 두고, 자연 세계에서 인류의 존재를 이해하는데 전념했던 ‘계몽된’ 18세기 사상가와 그것이 가져온 모든 경이로움이 어떻게 우리가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생물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을 수 있게 하는지(그러나 지금은 더 환상적이고 재미난 방법으로)를 생각해보자.
'Monstra Niliaca Parei', from Aldrovandi’s History of Monsters, 1642.

매더는 흥미진진하고 이국적이며 위험한 생물이 놀랍도록 빈번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던 것 같은 시대에 살았다. 이는 유럽인들이 유일한 북미 유대목 동물인 주머니쥐(opossum)를 만났을 때의 놀라움을 상상할 수 있다. 영국인들은 주머니에 새끼를 품고 있는 찌푸린 얼굴의 암컷 주머니쥐를 히드라, 켄타우로스 및 고르곤과 같이 또 다른 ‘괴물’ 생물의 신세계(New World) 판 융합으로 간주했다. 머리가 둘 달린 뱀과 거인들에 대한 보고서가 영국왕립학회로 전해지기도 했다. 바다 괴물에 대한 오랜 믿음을 가졌던 18세기는 이성적인 과학의 시대였던 만큼이나 경이의 시대이기도 했다. 사실 그 시대에는 과학과 경이가 뒤섞여 있는 듯했다. 매더와 같은 사람들은 궁금했다. 어떻게 이렇게나 팽창하고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서 인어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매더는 여성형 인어와 트리톤에 관한 조사의 긴 사슬에서 또 다른 고리를 연결했다. 고대에 걸쳐서 남성과 여성 모두 인어를 숭배하고, 접촉했었다고 주장했다. 기원전 5,000년에서 이르게는 4,000년까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남자 모습에 물고기 꼬리를 가진 에아(Ea)를 숭배했다. 반면, 블레셋인(옛날 팔레스타인 남쪽에 살며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힌 민족: 옮긴이), 시리아인, 이스라엘인들은 물고기 꼬리를 가진 여신인 아타르가티스(Atargatis, 또한 Dercerto라고도 알려져 있다)를 경배했다. 고전 시대에 그리스인들은 트리톤을 존경하고 사이렌을 두려워했던 반면, 바다 생물의 형태를 한 유사 신들은 중국과 인도의 종교적 전통을 특징으로 했다.

중세 유럽의 교회는 인어의 상징주의로 가득 차 있었다. 역사가 로버트 헌트(Robert Hunt)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초기 대성당 아치의 장식은 바다와 그곳의 생물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물고기, 돌고래, 인어는 그러한 장식의 초기 유형에서 나타났으며, 이후 나무와 돌로 이동했다.’ 학자들은 아직도 교회 장식에 등장하는 여성 인어와 트리톤의 정확한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쟁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 지붕 장식(roof boss)이나 내쌓기(corbel)에 조각되거나, 혹은 특면실(misericord)에나 벤치 끝에 새겨진 인어 장식의 반복된 등장은 분명 이러한 신비한 존재에 대한 중세적 숭배의 믿음에 영향을 미쳤다. 역사가 알프레드 와프(Alfred Waugh)의 주장에 따르면, 교회에서 인어를 ‘용인’함으로서 인어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 이들의 확신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종교 개혁을 겪은 영국의 숭배자들은 불안해하는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조각된 가톨릭의 형상을 없애는 동안 인어의 묘사는 온전히 남았음을 여지없이 알아 차렸다.

중세 시대에까지 조각가와 예술가는 일반적으로 한 손에는 빗, 다른 한 손에는 거울을 들고 벌거벗은 상반신과 길고 흐르는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과 같은 방식으로 인어를 표현했다.. 여성 인어는 호머(Homer)의 사이렌에서 유래했다. 호머의 괴물은 하늘에서 선원들을 공격한 하피(harpies)였지만, 이후의 저자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새와 비슷한 생물을 하체가 물고기 꼬리와 비슷한 여성으로 바꿨다. 인어의 신체적인 외모는 나아졌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들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

궁극적인 목표

명백히 성적인 존재인 여성 인어의 궁극적인 목표는 노래로 선원을 유혹해 깊은 얼음물로 끌어들여 에로틱한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이었다. 벨기에 출신의 작가 앤드류 로렌스(Andrew Laurence)는 16세기 초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인어는 남자를 기꺼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지독한 괴물이다.’ 비록 ‘바다에서 모습을 드러낸 인어는 여자와 비슷하지만, 꼬리는 물고기와 비슷하여 비늘이 있고, 감미로운 노래로 많은 훌륭한 선원들을 속였다.’고 로렌스는 말을 이었다. 또 다른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눈은 인어의 얼굴을 향하지 않고, 귀는 그녀의 노래를 참아낸다. 그녀의 얼굴에는 매혹적인 우아함이 있고, 더 매력적인 건 그녀의 혀다.’ 중세 유럽인들에게 인어는 바다의 위협일 뿐만 아니라 여성의 매력을 상기시키는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교회에서 인어의 표현은 아마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육체의 욕망에 대한 위험을 상기시키는 것이었지만, 해양 민속에서 인어의 반복적인 등장은 아마도 바다가 가져다준 수많은 죽음과 신비로움을 설명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A mermaid and a lobster, from Poissons, Ecrevisses et Crabes, French, 1754.

인어가 중세 유럽의 대성당, 문장학(紋章學: 가문의 문장과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 주화 및 전통문화에서 상징으로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는 동안, 17세기 영국 정치인 토마스 브라운은 그렇게나 많은 인어 상징들에 대해 ‘인어 그림에서 눈을 피할 곳이 없다.’며 다소 불쾌한 목소리를 냈다. 트리톤이 바다의 표상으로서 동일한 위험을 표현한 것이라면 그러한 구현들은 더욱 애매했다. 교회의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많은 트리톤을 발견할 수 없고, 동전과 문장을 인어로 자주 장식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트리톤은 일반적으로 인어가 바다의 왕 트리톤의 후손이라고 믿는 중세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에 진정으로 영향을 주었다. 인어의 바다 은신처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구석(corners)과 용기(receptacles)’로 인간 세계에서 보호되었다. 16세기 프랑스 외과의인 앙브루아즈 파레(Ambroise Paré)에 따르면 이러한 생물들은 몸의 아래쪽 절반이 비늘로 뒤덮인 물고기의 꼬리를 뽐내며 ‘위쪽 절반은…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트리톤은 여성 인어의 자연스러운 짝이었고, 두 생물 모두 중세(그리고 근대 초기) 유럽인들에게 바다에 대한 허망함과 호기심 모두를 상징했다.

고대 신화와 결합하며, 인어에 대한 교회의 용인은 여성 인어와 트리톤을 목격한 수많은 선원과 여행자들에게 신뢰감을 부여했다. 가장 인기 있는 목격담 중 하나는 영국 동부 해안의 어부가 신비한 생물을 그물로 잡은 11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생물을 살펴본 결과, 어부들은 그것이 ‘야생 혹은 야만인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을 발견했고 재빨리 오퍼드 성에 감금했다. 말은 하지 못했고, 날고기와 생선의 빈약한 식사로 연명하던 그 생물은 6개월 동안 성 내부에서 비참한 고통을 겪었다. 영국인들이 이 생물에게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을 허락했을 때, 그것은 도망쳤고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알몸에 벙어리’

더욱 유명한 이야기(매더도 언급했던)는 1403년 한 무리의 네덜란드 여성들이 에담(Edam) 마을 바로 외곽의 범람한 물속에서 버둥거리는 ‘알몸에 벙어리’인 여성 인어를 발견한 것이다. 인어를 인근 하를렘 마을로 데려가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게 ‘옷을 입고, 물레질하고, 빵과 닭고기를 먹는’ 방법을 가르쳤다. 한 저자는 하를렘 주민들이 ‘[인어에게] 일부 신의 개념을 씌었으며…그것이 십자가상을 지날 때마다 높은 경건함에 숭배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곳은 인간과 인어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궁극적인 예였다. 하를렘 주민들은 인어에게 물레질을 통해 생산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교육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로 개종시키기도 했다.
‘The Syren Drawn from the Life’: mermaid with measuring scale. Engraving after Gautier, c.1759.

16세기와 17세기에는 여성 인어와 트리톤을 목격한 사례가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럽인들이 상업 및 제국의 권력을 위한 탐험에 나서면서 세계를 샅샅이 뒤졌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탐험하는 곳마다 인어를 발견한 것 같았다. 신세계에 도착하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바다 위로 나온 세 명의 여성 인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콜럼버스는 여성 인어가 ‘그림에서처럼 아름답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인간의 얼굴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탐험가 헨리 허드슨(Henry Hudson)은 그의 두 대원이 북대서양에서 여성 인어를 감시한 1608년 6월 15일 일지에서 비슷한 언급을 했다. 전후 기록자들과 마찬가지로, 허드슨은 목격한 것에 대해 가능한 한 매우 세부적인 사항을 확실히 전달했다. ‘그녀의 뒷모습과 가슴은 여성과 같았고 그녀의 몸은 우리 중 누구보다도 컸다; 그녀의 피부는 매우 하얗다. 그리고 검은색의 긴 머리를 뒤로 늘어뜨렸다. .’ 콜럼버스는 또한 그 생물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했다. 근대 초기의 신사들은 이러한 탐험가들을 권위 있게 보았다. 오랫동안 유럽을 정의해 온 인어와 트리톤의 오랜 문화와 결합하며, 탐험에 대한 열풍과 그 모든 놀라움(그리고 이익)은 이러한 생물이 존재할 수 있다고 기꺼이 믿게 만들도록 조장했다.

종합해 보면, 그 당시의 다양한 목격담, 종교적인 표현과 역사적인 암시들은 1716년 매더의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이런 이가 매더 혼자 만은 아니었다. 사실 매더는 18세기에 인어를 뒤쫓고, 포획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국제적 임무를 띤, 증가하던 유럽의 박물학자 그룹에 동참했다.

비록 18세기 후반, 인어에 대한 과학적 조사는 놀랍도록 일반적이었지만 [사이렌 사생화(The Syren Drawn from the Life), 1756]에 실린 그림은 특히 빛을 발한다. 이 깜짝 놀랄만한 이미지는 결국 영국의 [젠틀맨 매거진(Gentleman’s Magazine, 1731년에 창간되어 1922년까지 발행된 영국 잡지. 옮긴이)]에도 게재되었다. [젠틀맨 매거진]은 부유하고 교양 있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신뢰성 있는 정기 간행물이었다. 프랑스 인쇄업자와 디종 아카데미 멤버인 자크 파비앙 고띠에(Jacques-Fabien Gautier)가 만들어낸 [사이렌 사생화]에서 사이렌은 고전적인 전설에서 등장하는 인어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고띠에 의 사이렌은 흐르는 머리카락을 과시하지 않고, 커다란 귀와 ‘끔찍하게 못생긴’ 외모를 가진 완전한 대머리였다. 고띠에는 그 흉한 생물을 산 채로 잡은 후에 작은 수조에 넣고 빵과 물고기를 먹였다고 맹세했다. 이 생명체는 깊은 바다로 유럽인들을 유혹하는 아름다운 사이렌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표본이었고 더 많은 과학적 조사가 필요했다.

퍼즐 조각

인어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일 뿐이라는 일부 사상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근세 철학자들은 인어의 퍼즐 조각을 찾기 위해 서둘렀다. 18세기 중반까지 인어의 부속물은 유럽인들의 ‘호기심의 방(cabinets of curiosity: 부유한 이들이 진귀한 수집품을 보관, 전시해 놓은 방으로 박물관의 효시가 되었다. 옮긴이)’에 채워 넣길 갈망하는 수집품과 같은 측면이 되었고, 영국 왕립학회의 한스 슬론(Hans Sloane)과 그의 동료들은 인어의 팔을 열심히 조사했다. 현대 분류학의 아버지인 칼 린네우스는 스웨덴 과학원에 스웨덴 뉘셰핑 해안에 살고 있다는 여성 인어를 쫓아서 포획해 달라고 촉구했다. 반면 유명한 프랑스 출판업자 루이 르나르( Louis Renard)는 바다 생명체에 대한 과학책에서 동인도 지역에서 잡은 여성 인어에 대한 충실한 그림을 싣기로 했다.

궁극적으로 이런 다양한 조사는 인어에 대한 유럽 사상가들의 이해를 목격에서 과학으로 이동하게 했다. 18세기가 끝날 무렵에 칼 린네우스, 벤자민 프랭클린, 피터 콜린슨(Peter Collinson), 브누아 드 말렛(Benoit de Maillett), 에릭 폰토피단(Erik Pontoppidan) 및 영국 왕립학회의 수많은 회원을 포함하여 서구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남성 중 일부는 이 이상한 생물을 추적하고, 포획하고(했다고 주장하고), 조사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돈을 소비했다. 그들은 인어에 대해 단순히 빈정거리거나 비꼬는 태도로 일관하지 않고, 직접 조사하고 행동했다. 이들과 다른 많은 사람에게 그러한 연구는 ‘싸구려 이야기’보다는 자연과학과 계몽 담론 때문에 한층 더 정의된 근대의 비전을 반영했다.

근대 과학자들은 근세의 그들처럼 세계를 돌며 인어를 쫓지는 않지만, 그들은 경이롭고 심지어 신화적이며, 선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자 하는 충동을 거의 잃지 않았다. 잃어버린 이집트의 도시를 밝혀내기 위해 우주에서 촬영한 사진을 사용하든, 평행 우주의 존재를 주장하든 오늘날의 사상가들은 매더와 같은 근대 초기 사상가들이 인어에서 보인 진취적인 정신을 이어간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인어에 관한 우리 자신만의 시각을 찾고 있다. 자연 세계에 관한 환상적인 측면은 인류가 무한한 시간과 공간의 경계에서 지구 위 궁극적인 목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번역 김명호)

*글쓴이 본 스크라이브너(Vaughn Scribner)는 센트럴 아칸소 대학의 역사학 조교수다.

*번역 원문
https://www.historytoday.com/vaughn-scribner/mermaids-and-mermen


덧글

  • 남중생 2018/05/26 01:25 # 답글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arly modern은 "초기 근대" 혹은 "근세"라고 번역하는 쪽이 혼동을 피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근세"라고 쓰는 것을 선호합니다.^^
  • self_fish 2018/05/26 08:39 #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틀렸군요! 으익~ ^^; "근세"로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울산왜성 2018/05/26 12:40 # 답글

    이전의 번역들도 마찬가지지만 실로 흥미롭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내용입니다. 시대적 배경이 소위 과학이라 불리는 영역에까지 미치는 영향에 대한 또 하나의 사례 소개 감사합니다.
  • self_fish 2018/05/27 11:09 #

    흥미로우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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