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시대 박제술이 만들어낸 흥미로운 생물들 by self_fish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대박람회에 등장한 이국적인 야생 동물 표본들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박제하고, 꿰매고, 마구잡이로 꾸몄다. 정확성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The Indian display from Dickinson's Comprehensive Pictures of the Great Exhibition of 1851, from the originals painted for Prince Albert, by Joseph Nash, Louis Haghe and David Roberts, 1854.

1851년 런던에서 열린 대박람회(Great Exhibition)의 인도 전시관 담당자들에게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급하게 박제한 코끼리를 요청했는데 호화로운 인도의 하우디(howdah)를 전시하기 위한 받침대로서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우디는 인도와 영국의 상류층들이 수송과 사냥에서 코끼리 위에 앉을 때 쓰는 정교하게 만든 좌석으로 최근 인도 서벵골주에서 국왕 무어셰다바드(Moorshedabad)가 빅토리아 여왕에게 선물했다. 다행히 오래된 암컷 표본이 샤프란 월든 박물관 인근 창고에서 발견되었다. 커다란 말이 끄는 화물 마차가 그 표본을 에식스에서 하이드파크로 가져왔다. 크리스털 팰리스에 도착하자마자 하우디는 그 암컷 코끼리 허리 위에 놓였고, 인도관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우디와 달리 그 코끼리는 결코 인도산이 아니었다. 사프란 월든 박물관은 1830년대에 남아프리카에서 그 암컷 코끼리 가죽을 샀고, 20년 동안 이를 전시했다. 그 코끼리는 인도가 아닌 아프리카코끼리였다. 코끼리 종을 구분하는 주된 특징 중 하나는 귀다. 이 코끼리는 암컷 아시아 코끼리와는 달리 귀가 더 길고 구부러져 있었고, 긴 아치형 상아를 가지고 있었다. 또 허리는 더 길었기 때문에 하우디를 안전하게 걸쳐 놓기에는 적합한 모양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시는 계속되었다. 이 아프리카코끼리 가죽이 인도의 동물로 에식스에서 발견되어 런던에서 전시되고 있다는 것에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대박람회의 코끼리는 빅토리아 시대의 전시회에서 박제한 생물의 선택, 큐레이션 및 전시에 있어서의 선택의 일면을 보여준다. 종합해보면, 하우디와 코끼리는 식민지 인도의 문화적, 자연적 부를 상징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묘한 반대되는 것들이 섞여 있었다. 하우디는 화려하게 조각한 코끼리 상아로 다채롭게 꾸며졌다. 그것은 또한 빅토리아 여왕이 소유하였고, 분명 그 기원은 인도였다. 다른 한편으로 박재된 코끼리는 이 화려한 의자를 위한 거치대였다. 전시회는 자연물과 인공물이 수없이, 때로는 모순되는 방식으로 합쳐지는 특이한 공간이었다. 박제한 코끼리 종을 바꿔버린 이런 경우에서와 같이 완벽함은 필수 조건이 아니었다.
Photograph showing a collection of furs and taxidermy assembled by Nicholay and Son, London and exhibited at the Great Exhibition. Claude-Marie Ferrier, 1851.

대박람회의 경우, 육지와 바다 건너에서 여러 종의 생물이 뒤섞인 채 하나로 모아서 보내졌다. 그러한 생물들은 전시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다채로운 전시용 아이템과 함께 다양한 전시회를 제공하는 세계 무역 네트워크를 촉진했다. 동물들은 죽은 것, 온전히 살아있는 것, 반쯤 죽어있는 것 등 여러 상태로 영국에 도착했다. 모든 동물과 가죽은 커다란 절임 통에 보관되었고, 런던과 다른 영국 도시들에 있는 박제 회사들의 손을 거쳐 동물의 형태로 다시 만들어져 받침대에 고정할 준비가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가죽은 명반 소금(alum salt)으로 덮어놓거나, 조류의 경우에는 오랜 항해 동안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고, 잘 건조하기 위해 비소를 함유한 비누(arsenic soap)를 잘 발라놓았다. 이 가죽들은 털이 안쪽으로 향하게 접혀있었고, 운반 도중에 곤충들이 먹어치우지 못하도록 테라핀을 발랐다.

대박람회의 코끼리와 같은 많은 생물이 임시 박물관을 위해 기존의 박물관과 개인 소장품에서 대여되었다. 피커들리 가의 유명한 박제사 로런드 워드(Rowland Ward)는 1886년 사우스 켄싱턴에서 개최한 식민지 및 인도 전시회에 사용할 가죽을 얻기 위해 인도의 인맥을 활용했다. 그들 중 한 명은 서 벵갈의 궁전에서 런던으로 여러 동물의 가죽을 선적한 쿠치 베하르(Cooch Behar) 왕국의 군주였다. 이 군주는 열대 우림 곳곳에서 많은 동물을 사육했다. 워드는 회고록에서 이 동물들이 인도산 진품임을 강조했다. 그는 수집한 그 나라에서 최근에 총에 맞은 동물 가죽에 가치를 더 두었는데, 마치 그러한 환경적인 요소가 그 동물과 함께 영국으로 옮겨진다고 여긴 것 같다.

물론 살아있는 동물도 전시되었고, 방문객들은 동물을 만져볼 수 있었다. 1895년에 얼스코트(Earls Court)에서 개최한 인도 왕국 전시회에서는 방문객들이 탈 수 있는 길들인 낙타를 제공했다. 전시 카탈로그는 높은 낙타 안장 위에서 인도관을 관람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국적인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1884년에 영국에서 개최한 국제 보건 박람회에선 가축과 육류 생산을 위한 영국 동물을 전시했다. 영국 농가의 입체 전시물에는 살아있는 소와 박제한 네 개의 뿔이 달린 휘슬리 품종의 양이 나란히 배치되었다.
A diagram demonstrating how to wire a lion specimen in Rowland Ward’s The Sportsman’s Handbook, 1880.

대박람회의 코끼리가 탄생했던 19세기 초의 박제술은 동물 가죽 속을 부족한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커다란 동물의 경우, 철망을 건초나 면과 같은 유기물 뭉치로 가득 채웠다. 가죽은 그 철제 틀 위에 씌어 함께 꿰맸다. 코끼리가 대박람회에 전시할 무렵에는 새로운 기술이 빠르게 개발되고 있었다. 박제사들은 서로 능력을 겨뤘고, 그들이 선보인 최신 방법은 전시를 보러온 방문객들이 비교하고 비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새로 개발한 방법들은 가죽에 맞게 동물의 몸 형태나 마네킹을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박제한 동물을 완벽하게 고정하기 위해 발은 종종 철사로 고정해 놓았고, 점막은 촉촉한 느낌을 주기 위해 채색되었고, 유리 눈은 눈꺼풀 아래 밀어 넣었다.

대박람회는 표본을 ‘실물과 비슷한’ 방식으로 다루기 시작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런던의 일간지 모닝 클로니클은 토리노 대학교의 박제사인 프랑수아 콤바(Francois Comba)가 런던의 심장부에서 사르디니아(Sardinia: 이탈리아 서쪽에 있는 섬)의 자연환경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옮겨왔는지를 설명했다. 이 신문은 그의 ‘웅장한’ 유럽 엘크 박제가 숨만 쉬지 않았을 뿐, 자신의 가죽 안에 숨죽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보도했다. 콤바의 성공 비결은 표본을 종이 반죽으로 주물을 떠서 원래의 가죽을 씌우기 전에 점토로 그 동물의 뼈대를 만든 것이었다.

동물 사체로 한 이 모든 실험이 늘 좋은 결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뉴어크온트렌트 지역의 비보어 (Beevor)박사는 열대 나무 수액을 동물 사체에 바르고 그 위에 가죽을 씌우는 방식을 시연했다. 모닝 클로니클에 따르면, 문제는 ‘거칠고 결함이 있는’ 틀 위에 가죽이 놓인다는 것이었다. 이 기술은 유행하지 않았다. 박제된 늙은 코끼리가 신기한 엘크 표본과 경쟁하는 전시회는 시행착오를 위한 무대였다.
The Canadian court in Cundall’s Reminiscences of the Colonial and Indian Exhibition, 1886.

방문객들은 영국 전역과 더 먼 곳에서부터 이 전시회를 보러 왔다.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이국적인 외국 여행지를 여행하는 것처럼 놀랍도록 다양한 해외관 사이를 여행했다. 1886년 식민지 및 인도 전시회에서 캐나다는 런던에서 여러 종류의 박제 생물을 전시했다. 캐나다 대표들은 박제 표본을 수직으로 전시했는데, 각각의 표본들은 팔각형의 틀 위에 놓였다. 수직 전시대에 놓인 각각의 동물들은 캐나다 지역을 나타냈다. 가장 꼭대기에서 내려보는 북극곰은 얼어붙은 북쪽을 상징하며, 눈 덮인 흰색 털은 문자 그대로를 반영했다. 이것은 캐나다의 다양한 야생 동물과 환경에 대한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캐나다는 박제 동물을 전시하는 여러 나라 중의 하나로 이를 통해 식민지 이전의 모습을 통해 애국심을 자아내도록 연출했다. 그러나 캐나다는 신생 독립국가의 주의 깊게 연출된 시각으로 전시했던 반면, 인도는 영국의 시각에 의해 여전히 통제되었다. 박제 동물은 식민지화된 땅과 그리고 그곳의 야생 동물에 대한 영국의 권력을 상징했다. 로런드 워드는 식민지 및 인도 전시관에서 ‘정글’ 전시의 목적은 ‘인도 전체 식물군과 동물군 중 더 인상적인 대표 생물 일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열대 캐랄라 후미 지역부터 우뚝 솟은 히말라야에 이르는 다양한 지형을 하나의 전시관 안에서 욱여넣은 야심 찬 시도였다.

워드는 1895년 인도 제국 전시회를 위해 자신의 많은 전시물을 재활용했다. 두 전시 모두에서 그는 같은 생태계에선 찾아보기 힘든 수많은 박제 동물을 사용했다. 카탈로그에는 ‘코끼리, 코뿔소, 호랑이, 표범, 버팔로, 들소, 야생 양, 산악 염소, 영양, 가젤, 뱀, 악어 및 수많은 조류, 나비 및 곤충을 포함한 수천 개의 표본을 볼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런 동물의 밀도를 야생에서 마주치기란 매우 희박하며, 오로지 영국 대중을 위해 만들어진 광경이었다. 이것은 접근 가능한 장소에 있는 매력적인 인도 동물들을 선별한 것이다. 인도 제국에서의 워드의 ‘정글’은 마치 하나의 도심을 만들기 위해 하나로 이어붙여 여러 지역과 도시에 건물을 세운 인도 도시의 복제품과 같았다. 인도는 단 하나의 시선으로 축소되었다.
‘Indian Jungle Life’ – a sketch of Rowland Ward’s ‘Jungle’ display in Cundall’s Reminiscences of the Colonial and Indian Exhibition, 1886.

워드는 전 세계로부터 ‘무엇이든 구하기 위한 자유로운 통신망’을 가지고 있었다. 불행히도 그는 인도에 요청했던 많은 표본을 받지 못했다. 이는 바다를 통해 동물과 물건을 주고받을 때 직면하는 시간적 지체와 물리적 어려움을 상기시킨다. 그가 필요로 했던 인도산 가죽을 전혀 구할 수 없으면, 워드는 동물 조각들을 즉석에서 만들어 잡다하게 섞은 인공적인 잡종을 만들어냈다. 인공 가죽(그의 피카들리 스튜디오에서 발견한 천으로 만든)을 표본에 씌울 뿐만 아니라, 그는 ‘모조 표본’ 위에 ‘여러 진짜 머리’를 부착했고,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인도의 풀과 야자나무도 도착하지 못했다. 임기응변에 능했던 워드는 이에 단념하지 않고 ‘인도의 잎을 대신해’ 보여줄 갈대, 습지, 죽은 나무를 수집하러 노퍽(영국 동부의 주)으로 향했다. 영국산과 인도산 식물은 한 아름 엮어 접착제를 두껍게 바른 종이로 만든 ‘모조 암석’과 함께 입체 모형 위에 놓였다. 이것은 효율적이었고, 워드는 회고록에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동물 일부는 숨겼다’고 회생했다. 워드는 이스트 앵글리아(영국 동남부 지역) 식물로 박제한 위조품을 숨겼다.

박제 생물과 환경의 왜곡은 전시회 특유의 급박한 일정에 일부 기인한다. 대박람회에서 오래된 아프리카코끼리는 담당자자가 제시간에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표본이었다. 이런 준비에 서툴렀고, 전시는 단지 일시적이었다. 박제 동물은 박물관에서와는 달리 오랜 기간 전시되지 않았다.

박제 생물을 보러 런던을 찾는 사람들의 흐름처럼 박제 생물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다. 그들은 단지 관광객일 뿐이었다. 대박람회 코끼리는 에식스로 돌아갔고, 20세기 중반까지 전시되었다. 워드는 인도의 국왕이 빌려준 '정글' 생물 중 얼마나 많은 생물이 그의 궁전을 꾸미기 위해 인도로 돌아갔는지 설명했다. 전시공간 자체도 일시적이었다. 이 구조물들은 잠시 동안만 세워졌고, 전시한 물건과 동물과 마찬가지로 해체되었다. 수정궁은 최초의 대규모 조립식 철제와 유리로 만든 건물이었다.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며, 불완전한 이 생물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에 마련된 호기심 어린 야생의 일부로서 짧은 생애를 보냈다. (번역 김명호)

* 글쓴이 앨리스 우드(Alice Would)는 브리스톨 대학교와 엑서터 대학교에서 빅토리아 시대 박제 무역에 관한 박사 학위를 수료할 예정이다.

*번역 원문
https://www.historytoday.com/alice-would/curious-creatures-victorian-taxidermy


덧글

  • 까마귀옹 2018/09/02 19:12 # 답글

    박제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동물원/식물원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방문객들이 모두 동식물에 대해 진지한 탐구와 사색을 위해 방문하는 건 아니에요. 자극적이고, 신비롭고, 감성을 자극할 만한 '모습'만을 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신들이 구경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동식물 개체인지는 그 다음 문제이고. 현대에도 이러한데 저 19세기 당시에는 말할 것도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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