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그리다: 관찰과 표현의 과학사 (5) by self_fish


과학잡지 에피도, 그리고 창간과 함께 연재를 시작한 제 만화도 어느덧 1년이 지나 5화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저번 화까지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등장하기까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달에 대한 생각(개념)이 달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갈릴레오와 해리엇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했습니다.

페렉(Nicolas-Claude Fabri de Peiresc, 1580-1637)으로 이야기의 시작을 연 5화부터는 달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제쳐두고, 오로지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표현하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페렉이란 인물은 해리엇과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의 인물입니다. 페렉 역시 권력의 쓴 맛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고, 그래서 너무 밀접한 관계를 갖지 않으려 했습니다. 페렉은 해리엇과 마찬가지로 천체를 관찰했지만, 그에 관한 어떠한 이론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페렉은 객관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했습니다. 경도 측정을 위한 달지도 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페렉은 자신의 지위와 인맥을 이용해 수학과 천문학에 배움이 있었던 성직자들을 적극적으로 달관측에 동원하였습니다. 페렉의 이같은 노력 덕분에 갈릴레오의 이단 재판으로 인해 천문 연구에 대한 분위기가 살벌해졌던 상황에서도 천체 관측은 끊임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생각을 제쳐두었다고 했지만, 사실 페렉과 그의 동료들은 이미 달을 지구와 같은 땅이라고 전제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달이 기체와 같은 성질의 미지의 천체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면 이를 지도로 기록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달 관측에 참여한 모든 성직자들은 달이 지구와 같은 땅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받아들인 것입니다. 페렉이 이같은 측면을 노렸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페렉의 관측에 참여함으로서 믿음으로 눈을 닫은 성직자들에게 객관적인 관찰의 기회를 마련해주었고, 천체에 대한 고대의 생각에 끊임없는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관찰은 도구의 도움을 통해 경계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천체 관측도 망원경의 등장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관찰한 것을 ‘정확히’ 기록하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선 합의된 틀이 필요했습니다. 페렉은 처음부터 망원경의 종류,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 등이 통일되지 않아서 정확한 기록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 망원경이 등장한 초기부터 제기되었던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망원경으로 본 것이 실제하는 실체인지, 망원경이란 도구가 만든 왜곡된 상인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또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옮겨 그린 그림이 눈에 보인 실제 그대로를 옮긴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해석이 들어간 그림인지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요?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에선 이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Peiresc를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다가, 2009년 승산에서 출판한 [갈릴레오가 들려주는 별이야기]에서 장헌영 선생님이 페렉으로 번역한 것을 따르기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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